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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길 터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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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 유명 여성 연예인이 구급차를 타고 공연장소로 이동했다가 큰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공연을 위해 부산에 도착했으나 일정이 촉박하자 민간 구급차를 이용해 약속시간을 지켰다. 이 사실은 며칠 뒤 그가 SNS에 자랑삼아 글을 올리는 바람에 뒤늦게 들통이 났다. 게다가 이 연예인은 거센 비난이 일자 “수능 때도 시험 시간에 늦은 학생들이 구급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안다”는 적반하장식 해명을 해 더욱 궁지에 몰린 바 있다.

우리나라 법규상 소방 및 구급차량은 과속이나 신호위반이 어느 정도 허용된다. 화재를 진압하거나 큰 사고를 당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촌각을 다투어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러다 보니 위의 사례처럼 이를 악용하는 일도 적지 않다. 민간 구급차가 긴급을 인정할 만한 요인이 없음에도 교통정체를 피할 요량으로 신호등을 무시한 채 비상등을 켜고 달리는 행위는 당연히 불법이다.

사회학자들은 종종 비상차량을 대하는 국민의 자세를 특정 국가의 민도를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한다. 소방차나 구급차가 도로를 달릴 때 주변 차량들이 얼마나 신속하게 길을 비켜주느냐가 그 나라 수준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는 한국도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길 터주기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소방청 집계에 따르면 화재신고 이후 초기 진압이 가능한 7분 내에 현장에 소방차가 다다르는 확률은 2018년 기준 64.4%다. 2016년(63.1%)에 견줘 다소 나아졌으나 선진국에서는 6분대 도착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특이한 것은 대도시와 중소도시 간 차이가 크다는 점. 서울 부산 등 광역지자체는 늘 교통량이 많음에도 7분 내 소방차 도착 확률이 85.5%로 평균치보다 높았다. 반면 일반 지자체는 53%에 그쳤다. 소방청은 길 터주기에 대한 지역민의 인식 차이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는 오늘 전국에서 ‘소방차 길 터주기’ 국민 참여훈련을 진행한다. 소방 및 구급차량을 바라보는 국민 인식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외국에서는 긴급차량 통행을 방해하면 상당한 액수의 벌금을 물린다. 일부에서는 우리나라도 처벌 기준을 높이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엄벌보다 앞서야 할 것은 국민의 배려심. 역지사지의 마음만 있다면 긴급 차량에 도로를 양보해 잠시 내 시간이 지체된다고 해서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부산교통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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