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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사람 잡는 관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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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증 안내 서비스를 이용하세요.”(공무원) “어떻게 하죠?”(민원인) “인터넷 홈페이지에 전화번호가 있습니다.”(공무원) 2016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평생 목수로 성실하게 살아온 주인공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돼 일을 그만둔다. 먹고살기 위해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간 관공서에서 주인공은 큰 난관에 직면한다. 모든 행정 절차가 전산화된 탓에 ‘컴맹’인 주인공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컴맹’을 위한 행정 서비스는 없다. 우여곡절 끝에 한 싱글맘의 도움을 받아 실업급여 신청을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형식적인 심사로 인해 지급 대상에서 탈락한다. 주인공은 결국 화장실에서 쓰러져 죽는다. 가해자는 관료주의다. ‘사람 잡는 관료주의’다.

이 영화는 픽션이 아니다. 철저한 현장 취재를 통해 포착한 영국 복지의 음지다. 영화의 주인공처럼 인터넷 등 신기술을 몰라 불이익을 받는 노인, 일자리를 못 구해 굶기를 밥 먹듯이 하는 청년 등등. 켄 로치는 복지권역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담담하게 담아냈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영화 주인공의 절규는 소외된 영국 기층 민중의 절규다. 그 절규가 날아와 관객의 가슴에 꽂힌다.

‘사람 잡는 관료주의’는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우체국 집배원의 과로사가 단적인 예다. 지난 19일 충남 당진우체국의 한 집배원이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숨졌다. 과로사로 추정된다. 올 들어 9명째다. 2016년과 2017년에는 각각 19명, 지난해엔 25명이 과로나 사고로 사망했다. 우정사업본부와 노조, 전문가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집배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745시간이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2052시간)보다 693시간이 많다. 그런데도 정부는 집배원을 충원하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집배원의 노동시간이 전반적으로 주 52시간을 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우정노조는 “일찍 출근해도 지정된 시간에 출근한 것처럼 입력하고, 퇴근 입력을 한 뒤에도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치와 다른 현실을 호소한다. 현장에 등돌린 관료주의가 집배원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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