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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논란의 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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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하나. 지금 와서 30년 전을 되돌아보면 옛날 청년은 적어도 취업 문제 하나만은 행복한 세대였다. 당시엔 웬만한 대학의 상대 공대 학과 사무실에 대기업 취업 추천서가 넘쳐났다. 대학 4학년 2학기는 입사할 곳을 정해놓고 가방만 들고 학교에 다닌 학생도 많았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취업을 위해 스펙을 굳이 갖출 필요가 없었다.

요즘 청년은 그렇지 않다. 옛날 청년과 비교하면 좀 많이 안됐다. 요즘 청년은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갖춘 세대라는 말을 듣는다. 학점은 기본이고 토익 800, 900점대에다 온갖 자격증을 갖춘 청년이 허다하다. 제대로 준비된 세대다. 하지만 화려한 스펙이 취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가 부족한 탓이다. 대학가에 가면 서른 넘긴 학생이 수두룩하다. 취업 문을 넘지 못해 졸업을 미루거나 졸업 후 학교 주변을 맴도는 청춘들이다.

취업 기회만 적은 게 아니다. 입사시험 자체가 필기시험과 면접만 보던 옛날보다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요즘은 필기시험도 서류전형이란 높은 벽을 통과해야 칠 수 있다. 필기시험에 합격해도 다양한 실무평가와 심층면접 등을 또 치러야 한다. 주관적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많아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청년은 스펙에 민감하다. 최고의 스펙은 배경이나 인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스펙도 갖추지 않는 것보다 나은 것일 뿐 당락에는 큰 영향이 없다”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최근 터져 나오는 잇단 채용비리를 보면 전혀 근거 없는 말도 아닌 듯하다.

최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아들 스펙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아들이 스펙이 하나도 없었지만 대기업에 입사했다”라는 취지의 발언에는 나쁜 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 취업난에 고통받는 청년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아 보인다. 특히 청년 사이에서는 “황 대표 아들이란 자체가 거대한 스펙”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더욱이 취업한 대기업은 요즘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KT다. ‘부정 채용 의혹’까지 제기됐다.
황 대표 입장에서는 이런 여론이 억울할 수 있다. 실제 아들의 스펙은 황 대표의 말과 달리 명문대 법대 출신에 900점이 넘는 토익, 인턴 경력 등 빵빵 했다고 한다. 이래서 사과 여부를 묻는 기자 질문에 답하지 않은 지도 모른다. 스펙에 대한 청년의 불신을 느끼지 못하는 듯해 안타깝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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