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울릉도 성인봉 부근에서 조난 신고가 접수돼 119소방대원들이 긴급 출동했다. 천신만고 끝에 부상자를 찾긴 했는데 명이가 가득한 포대를 끌어안고 같이 하산하겠다고 버티더란다. 승강이 끝에 부아가 치민 구조대는 이 조난자를 데리고 내려온 즉시 불법 채취 혐의로 경찰에 신고해버렸다. 자연산 명이는 울릉군산림조합에서 발급하는 채취증을 가진 사람만 캘 수 있다. 울릉도 거주가 3년 이상이어야 하고, 채취기간과 채취량에도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하지만 해마다 4~5월이면 불법 채취꾼들로 울릉도가 몸살을 앓는다. ㎏당 수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가격 때문이다. 며칠만 작업해도 웬만한 직장인 한 달 월급이 떨어진다고 한다. 명이를 캐다 길을 잃거나 절벽 아래로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오징어 호박엿과 함께 울릉도 특산물로 유명한 것이 명이나물이다. 주민들이 춘궁기에 이 나물을 먹고 명(命)을 이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뿌리가 마늘처럼 생겨서 산마늘이라고도 불린다. 경북 문경이나 예천 등 육지에서 명이나물 재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러나 울릉도 명이가 특별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겨울 깊은 눈 속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자라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이 난다는 것이다.
이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첫날인 지난달 29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친교만찬에 울릉도 명이장아찌와 불고기 소스를 곁들인 미국산 소고기 스테이크가 메인 메뉴로 올랐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한국과 미국의 조화를 상징하는 구성”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명이는 간장에 절여 장아찌로 만들면 육류와 특히 궁합이 좋다. 치즈햄버거와 콜라를 즐기는 입맛으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이 짭조름하면서도 달고 쫀득한 식감이 있는 명이장아찌의 풍미를 충분히 즐겼을지는 알 수 없다.
2년 전 트럼프의 첫 번째 방한 만찬상에는 독도새우가 올랐다. 일본 정부는 당시 “한·미·일 연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항의성 유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남·북·미 3국 정상의 ‘DMZ(비무장지대) 회동’이라는 사상 초유의 빅 이벤트가 연출된 덕분에 트럼프의 두 번째 방한과 관련된 사소한 의전은 묻히는 분위기다. 그러나 한미 정상의 만찬상에 두 번이나 울릉도 독도 관련 메뉴가 등장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일본과의 불편한 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이다 보니 ‘음식도 정치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를 수밖에 없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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