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네덜란드는 북해 유전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경제 부흥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오히려 제조업이 몰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제조업의 발전이 동반되지 않는 단순한 자원 개발이 오히려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현상은 국가경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례로 다루어졌고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루치르 샤르마는 그의 저서 ‘애프터 크라이시스(After the Crisis)’에서 네덜란드병을 예로 들어, 국가경제 기반으로는 단순한 자원 보유보다는 제조업 인프라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250조 원 규모의 글로벌 투자펀드를 운용하는 모건스탠리 신흥시장 총괄대표가 내놓은 분석이니, 자원 부존국(不存國)이면서 대표적인 제조업 기반 산업국가인 우리나라에는 그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선포를 통하여 ‘제조업 부흥이 곧 국가경제 부흥’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전략적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스마트, 친환경, 융·복합 분야를 중심으로 제조업 혁신을 이끌겠다는 내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조선해양산업 분야에서 지난해 말 기준 1.2%였던 신제품 비중을 오는 2030년까지 93%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대표적인 신제품 적용 시장으로 LNG 추진 선박과 수소 선박을 설정했다.
이러한 정부의 제조업 지원 의지는, 제조 역량을 잃으면 혁신 역량까지 잃게 된다는 분석과 함께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제조업이 여전히 국가경제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서구 산업국들이 축적한 선험적 불문율은 ‘국가경제를 위한 최고의 투자는 제조업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라는 것이다. 이번 비전 선포식과 연이은 후속 발표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제조업과 국가경제 부흥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선해양산업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영국 총리를 두 번이나 역임했던 윈스턴 처칠의 다양한 업적 중 조선해양산업의 관점에서 획기적인 사실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해군성 장관을 맡고 있던 처칠은 기름을 연료로 쓰는 군함을 건조하라고 지시한다. 석탄과 증기기관을 이용한 군함이 전부였던 시기였으니 당연히 반대는 거셌고, 석탄 산업계를 중심으로 장관 퇴임론까지 제기되었다.
하지만 그는 남다른 혜안과 추진력으로 세계 최초의 석유 연료 군함을 건조하게 하여 전장에 투입했다. 군함으로서의 성공과 실패는 전사(戰史) 속 기록으로 다루어지지만, 산업역사 관점에서는 조선해양산업의 틀을 바꾼 혁명적 시도였음을 알아야 한다. 이때부터 기름을 이용한 내연기관 추진 기술이 표준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칠시대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 선박의 연료가 이제 기름에서 가스로 바뀌고 있다. 에너지 효율이나 환경오염 문제와 같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여 나타난 변화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당연한 듯 사용되던 추진 방식이 ‘드디어’ 바뀐다는 것이다. 석탄에서 기름으로 선박 연료가 바뀌면서, 당시 영국의 조선산업을 지탱하는 제조업의 구조는 대변혁을 이루었다. 새로운 선박 출현, 그 이후 이어진 세계 최대 산업국으로서의 영국의 도약! 우연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재나 부품을 이용해야만 완성체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해양산업은 모든 제조업 중에서 전후방 산업 연결 효과가 가장 큰 산업이다. 제조업군(群)을 이끌며 주요 산업국 지위를 유지하는 선두주자 역할을 예나 지금이나 조선해양산업이 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새로운 선박의 출현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요구하고, 이에 맞추어 관련 제조업은 새 시장으로 재편된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선박 건조 국가임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선박 출현의 최대 수혜자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가 될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수소 선박! 지금까지 아무도 건조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선박이 머지않은 미래에 시장에 나온다. 투자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과 최신 산법은 필요하지 않다. 이 새로운 선박이 제조업과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정부는 제조업 그리고 조선해양산업을 대상으로 시의적절한 지원 정책을 제시했다. 이제는 조선해양을 아우르는 제조업계가 시장 재편으로 화답할 때다. 문제는 제조업이다.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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