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부터 4박5일간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리산의 성삼재를 출발, 강원도 진부령까지 1400㎞를 달렸다. 강원도에서 귀가하는 거리를 합산하면 2000㎞를 달린 셈이다.

백두대간에는 80개의 재와 영이 있다. 이 모든 재와 영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동쪽에서 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또 서쪽에서 다시 산맥을 동쪽으로 80개의 재와 영을 넘어 다니면서 진부령까지 북상했다. 80개의 재와 영을 다 보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과 그것을 제안한 친구의 안내 덕분에 목적을 이루고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백두대간을 달리는 중 남부에서 중부 지방 근처까지는 아스팔트 길마다 양파를 담은 주황색 그물 자루가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풍년이 들어 농부들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많은 양파 자루가 끝없이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폭락하는 양파 가격 때문에 농민들의 고통이 한층 가중될 것을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북으로 북으로 달리면서 또 하나 느낀 점은 골짜기마다 산속마다 어디 한 군데도 빠짐없이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살더라는 것이었다. 이 좁디좁은 한국 땅에 사람이 안 사는 곳이 거의 없더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하자면 이 좁디좁다고만 생각한 이 땅이 좁지만은 않고 강원도 가는 길이 화살처럼 달리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려도 나흘이나 걸리더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땅의 곳곳에 사는 이들이 하나같이 친절하다는 것이었다.

쏜살같이 달리는 모터사이클 위에서 가끔 히죽히죽 웃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거의 실현성이 없는 상상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국회의원과 위정자, 고급 관료들에게 의무적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히죽거린 것이었다. 관념 속의 국토가 아닌 제 발로 걸어본 국토, 개념 속의 국민이 아닌 제 발로 걸어서 만나 본 선민들의 삶을 공감하게 만드는 시스템으로 이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금 이 글은 일본 도쿄의 신주쿠 어원 근처의 호텔 로비에서 쓰고 있다. 나는 이 동네에서 35년 전 7년 동안 산 적이 있다. 부산에서만 산 나로서는 여기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기도 하다. 사진을 공부하는 친구들(나는 나와 함께 사진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친구라고 부른다)과 단체전을 하러 왔다. 그 덕분에 신주쿠를 35년 만에 둘러보았다. 전시장도 옛날 그대로이고 그 주인도 옛날의 그 친구 그대로이다.

나이가 먹어 머리가 허옇기는 하지만 70을 내다보는 그가 기력이 쇠해 보이지는 않았다. 옛날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던 카메라 점포가 이제는 엄청난 규모의 큰 백화점식 카메라와 가전제품 판매점을 새로 지은 것이 이전과 달랐다. 그 외는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이전에 붙어 있던 간판이 여전히 오늘도 붙어 있는 곳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가끔 내용을 알 수 없는 간판이 옛날 간판 대신 새롭게 자리 잡은 것도 보았다.

지하철을 타면 나의 학창 시절에 나처럼 젊었던 배우나 코미디언의 포스터가 어느덧 나이가 들고 흰머리에다 주름 잡힌 얼굴로 웃고 있었다. 세월이 덧없음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포스터들이었다. 도쿄에서 유학을 시작한 것은 1985년이었다. 당시는 한국의 국민소득이 겨우 일본의 20% 수준에서 맴돌 때였다.

한국이 일본의 국민소득을 절반까지 따라잡았던 시기가 2010년. 그리고 지난해에는 일본의 77.4%까지 다가섰다. 세계적으로 이만한 동력을 지닌 나라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백두대간을 달리던 중 한국의 정치판을 생각하면 히죽거리게 되었다.

이런 기적은 기업과 국민이 이룬 것이다. 정치를 잘해서가 아니라 정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기업과 국민이 각개전투로 이런 기적을 이루어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대단한 한국이고 나의 조국이다. 기업과 국민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 위정자들은 알까? 그들에게 백두대간 종주를 시키면 알게 되지 않을까? 백두대간을 달리면서 히죽거린 사람이 나 하나였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런 것 같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