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하다 끔찍해.” 조셉 콘래드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에서 주인공인 커츠가 죽기 바로 직전에 남긴 말이다. 현대문학의 고전에 꼽히는 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도출할 수 있겠지만, 한마디로 간추리면 인간문명에 대한 실존적인 차원의 의문일 것이다. 즉 우리가 흔히 문명의 발전이나 진보라 일컫는 상태에 대한 회의다. 커츠는 자신만의 왕국을 만듦으로써 문명의 신화에 도전했지만, 결국 자신의 믿음에 스스로 발등이 찍힘으로써 죽음이라는 숙명에 맞닥뜨리게 된 인물이다. 경쟁과 기술이 삶의 질을 높이고 개인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믿음이 아직까지도 널리 퍼져 있다. 성공신화는 사후(事後)적으로 만들어진다. 모든 신화가 그렇듯이 현대인들이 너도 나도 신봉하고 ‘진리’라 생각하는 것들은 구성된 것으로써 놓여 있다. 인생의 마디 점에서 자신이 볼 때 ‘이만하면 성공했다’고 믿을 때 재앙은 곧잘 찾아온다. 커츠가 빠진 함정이 이것이었다. 그는 힘겹게 쟁취한 자신만의 세상이 영원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끔찍한 것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따지고 보면 끔찍하지 않은 건 별로 없는 듯하다. 다르게 생각해보자. 행복한 순간은 수도 없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으면 별 탈이 없이 줄곧 행복감에 젖어 든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즐겁고 기쁘면 됐다. 그런데 평소에 느꼈던 행복이 앞으로도 지속되리란 믿음도 어찌 보면 허상에 지나지 않다. 우리 말에 ‘끼니’가 있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하면 재미가 있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이 말이 ‘끊다’에서 비롯되었고, 적당한 때에 반드시 끊어 먹어야 한다고 해서 ‘끼니’가 되었다는 설명을 한다. 다시 말해 배 터지도록 먹는다고 끼니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끊을 때가 된 사실을 깨닫고 즉시 끊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끊을 때를 놓치는 순간이 자신에게 재앙이 찾아오는 때이다.

성공과 행복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사회 분위기와 세태 속에서 아등바등 뒤엉켜서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을 생각한다. 끊임없이 돈을 벌거나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아직은 인생의 꽃길에 안착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모습들을 떠올린다. 어찌 보면 우리 인간만큼 전염에 강한 존재도 없는 듯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의 일원이 되는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시스템에 영락없이 걸려들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이미 ‘너’를 포함한 ‘당신’들이 간절히 희구하던 것이었다. 자발적인 욕망이라 여기지만 실은 매개가 되고 중개되고 간접화된 욕망이다. 이런 욕망의 거미줄 같은 사회 메커니즘 때문에 어쩌면 진보라 흔히 말하는 상태를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희생된 숱한 존재와 가치를 상상한다.

물론 이 상상은 터무니없다. 우리는 늘 인지불능의 상태에서만 일을 기획하고 획책하고 실천하기에, 체제 바깥의 사유와 상상은 뒤늦게 생겨나는 ‘사탄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일을 그르치고 난 뒤에 찾아오는 후회 같은 감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혹은 물질적 풍요로움이나 삶의 편리함 이면에 가려진 어떤 그늘을 되짚어보자는 말도 아니다.

삶의 외형이 빛날수록 이 빛깔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 쓰는 우리이다. 그러다가 조금만 퇴색하거나 바래지면 경쟁에 뒤처졌다고 자책하거나 절망한다. 그리곤 자신이 살아온 삶의 길을 되돌아보지만, 이 세계에 대한 원망과 질시만 쌓여갈 뿐 해소될 길 없는 삶의 미궁의 바닥을 들여다 볼 능력과 의지조차 이미 박탈당한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과 허무함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무언가를 열심히 찾곤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시간은 흐르고 여느 사람들과 비슷한 심정과 감정의 울타리 속에 절로 스며드는 것이다. 똑같은 ‘보통사람’이 된다. 지금 내가 취하거나 추구하는 것들을 잠시 끊어보는 게 어떨까. 쉴 틈도 없이 무엇을 향해 달려가더라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시간을 두고 훑어보거나 구경하면 어떨까. 소설 ‘어둠의 심연’의 주인공이 이전의 자신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지만, 그마저 그런 달콤한 환락의 상태에 빠져든 자신을 깨우지 못했기에 그 행복이 몰락의 늪이었다는 사실을 죽음에 임박해서야 깨달았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는 실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스스로의 삶의 목적과 과정이 선명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지불능의 삶에서는 죽음조차 우리와 무관한 영역이라 여기는 법이다. 시간은 쏜살같더라도 무엇을 끊은 상태는 적어도 무한히 펼쳐진 진공의 세계를 맛볼 기회를 얻는다. 진공이 가져다주는 시원하고도 빵빵한 감촉을 만끽하다보면 끔찍함도 행복감도 절망감도 죄다 물거품 같은 환영에 지나지 않음을 비로소 알게 되리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