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쉴 권리, 일할 의무 /정순백

정년연장 통한 인력 확보, 저출산 시대 세계적 추세

청년실업 가중 해소 위한 일자리 창출 보완 없으면 장년층 노동질 저하 우려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나.” 그날 자리에 있지도 않은 그 선배의 이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찌 보면 자리 분위기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아닌가. 그날 자리의 주 화제는 정년 연장이었다. 반응은 좀 많이 뜨거웠다. 함께 했던 이들은 대부분 쉰 중반 즈음. 정년을 바라보는 나이들이었기에 훅 끌릴 만한 사안이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정년 연장을 논의할 시점”이라는 말은 이미 확정된 정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추진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도 있었다.

보통 월급쟁이의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물려받은 재산은 없고, 연금도 시원찮은데, 별다른 노후 대책을 해 둔 것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퇴직은 낭떠러지에 내몰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몸뚱어리로 버틸 수밖에 없다. 월급이 반 토막 나고, 일이 좀 험해도 해야지 별수가 있나. 월급쟁이 신분의 연장은 이쯤 되면 선택 사항이 아니다. 의무다.

그런데 이 묘한 기분은 무엇인가. 술만 먹으면 들어 그렇게 짜증스러웠던 선배의 그 푸념이 그날은 유난히 가슴에 와 닿았다. 그가 처한 상황이 개인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는 예순 중반의 회사원이다. 늘 은퇴하고 싶어 한다. 중견기업을 정년퇴직한 뒤 조그만 회사에 입사한 지는 5년째다. 일할 만큼 했고 쉴 나이가 됐다. 더욱이 회사 사장은 친구이고, 경영은 아들에게 넘어가는 시점이어서 더욱더 그만 다닐 때가 됐다는 마음이 들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회사에 다닌다. 그것도 꾸역꾸역 마지 못해. 퇴직 후 집에서 놀면 늙는다는 말은 그에게는 사치다. 생계형이기 때문이다. 처한 상황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의 아들과 딸 모두 대졸 취업준비생이고, 부인은 평생 전업주부다. 국민연금은 월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정도.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이 돈으로 살아야 한다. 가진 재산은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가 전부. 은퇴할 여건이 아니다. 그러니 더럽고 아니꼽고 힘들어도 돈 벌러 나갈 수밖에 없다.

전후 베이비붐 1세대 맏형쯤 되는 ‘낀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40년 넘게 직장을 다니며 부모를 모셨던 모범적인 가장이다. 자식들 대학만 졸업하면 허리 펴고 살 것이라며 충실하게 살았다. 그런데 퇴직해 쉴 때가 되니, 세상은 변해 버렸다. 대학을 나왔다고 바로 취직이 되는 시절이 아니었다. 자식들이 취업난으로 몇 년째 인턴에 ‘알바’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부양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서른 넘은 자식을 아직도 뒷바라지해야 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터질 만하다. 그런 그가 스트레스 푸는 방법은 한잔 걸치고 했던 하소연을 또 하는 것이다. 그러니 더 꼰대 소리를 듣는다.
이마에 늘어난 주름살 탓인가. 희한하다. 그의 하소연이 남 일 같지 않다. 그만 겪는 일이 아닌 탓이다. 그래서 더 서글프다. 주변 환경은 갈수록 좋지 않다. 실업률은 4%대에 달할 정도로 일자리가 부족하다. 청년 실업률은 10% 수준으로 심각하다. 그런 상황에서 정년을 늘린다고 한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해 일할 사람이 부족하단다. 일자리도, 일할 사람도 부족하다니 무슨 이런 조화가 있나.

만약 법이나 제도로 정년을 연장하면 그 혜택을 바로 보는 사람은 공무원 공기업 그리고 노조가 확실한 대기업 근로자일 것이다. 모두 좋은 일자리다. 이는 정년 연장이 청년실업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기업의 신규 투자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없으면 청년실업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하지만 노조가 확실하지 않은 회사의 종사자는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등의 형식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가족 생계를 계속 짊어져야 하면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한다. 일할 사람은 필요하지만 노동 환경이 열악해 젊은 층이 꺼리는 일자리는 이들의 몫이 될 것이다. 돌봄 노동과 같은 틈새 일자리가 대표적이다. 우리보다 앞서 정년을 폐지한 영국과 70세로 연장을 추진 중인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너무 많이 나갔나. 저출산 고령 시대를 맞아 정년 연장은 세계적 추세인 것은 맞다. 선진국 가운데 우리보다 정년이 이른 나라는 없다. 프랑스만 62살로 2년 연장했다가 연금 지급이 늦어지는 데 대한 저항으로 원위치로 갔을 뿐이다. 북유럽은 60대 후반이고, 미국과 영국에선 법정 정년이 폐지된 지 오래다. 경험이 커다란 사회적 자산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은퇴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 구조는 문제가 있다. 일할 의무만 있고 쉴 권리가 없는 게 우리 사회다. 그래서 노후를 대비한 사회안전망이 중요하다. 청년실업도 해소돼야 한다. 쉴 권리 확보를 위한 전제 조건들이다.

현재 정부는 정년 연장 방안 마련을 위해 ‘범정부 인구정책 태스크포스’를 가동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하는 걱정이 기우라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


[국제신문 공식 페이스북] [국제신문 인스타그램]

 많이 본 뉴스RSS

  1. 1현대사회 속 인간의 욕망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2. 2근교산&그너머 <1139> 김천 인현왕후길
  3. 3부산의 전통주 양조장 <3> 동래 제이케이크래프트
  4. 4“독도, 우리 땅이란 증거 있나” 부산대 교수 끝없는 막말
  5. 5[서상균 그림창] 님들! 여기도 와주셔, 힘들대…
  6. 6추석선물, 화과자·사케 대신 이색과일·견과류 어때요
  7. 7여성 안무가 3명 ‘몸으로 쓰는 詩’
  8. 8[호텔가] 해운대그랜드호텔 한식당 ‘비스트로한’ ‘아크 페일에일’ 론칭 外
  9. 9에어컨 실외기 그늘에만 둬도 전기 10% 아껴요
  10. 10“학장 부적절 언행으로 교내 구성원 모두가 수모”
  1. 1‘조국 딸 학위취소’ 국민청원 비공개 전환한 청와대… 삭제·비공개 조건 보니
  2. 2홍준표, 나경원 겨냥 "조국 못보내면 그만 내려와야"
  3. 3북한 방사능 “우라늄 공장 폐기물 서해 유입 가능성”
  4. 4靑 "기조 변화 없다"…'조국 여론' 주시하며 '정면돌파'할 듯
  5. 5의사협회, 조국 딸 의학논문 지도교수 윤리위원회 회부
  6. 6조국 딸 장학금 논란에 이어 ‘제1저자’논란...조국 측 “지도교수의 판단”
  7. 7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 공동 저자들, 서울지검에 모욕 혐의로 조국 고소···이리저리 치이는 조국
  8. 8공지영 "조국 지지…촛불 의미 포함된 이겨야 하는 싸움"
  9. 9여야, 내년 총선 부산 최대 승부처 북강서을 화력 집중
  10. 10조국 딸 장학금 준 교수, 올 초 부산대병원장 내정설 파다
  1. 1추석선물, 화과자·사케 대신 이색과일·견과류 어때요
  2. 2양키캔들 50주년 ‘인기상품’ 한정판 재출시
  3. 3프라페노와 만난 젤라또
  4. 4데이터·AI 고도화에 1조1000억, 바이오·미래車에 3조 투입
  5. 5한~일 뱃길 손님 급감에 부산항 면세점 최대 위기
  6. 6‘부산업체 제품 사주기’ 민관 힘 모은다
  7. 7부산공동어시장 노사, 1년 만에 임단협 타결
  8. 8부산항에 ‘5G 스마트 기술’ 심는다
  9. 9균형발전 정책 발굴할 전국 첫 네트워크 부산서 닻 올려
  10. 10부산 향토빵집 B&C도 백화점으로 쏙~
  1. 1이용마 기자 별세, 향년 50세… ‘MBC 해직·복직기자’ 복막암 투병
  2. 2북한 방사능 피해, 순천 우라늄 광산서 암환자 증가..."방호장비 없이 우라늄 채취"
  3. 3GTX B 노선 ‘사실상 통과’ 평가… 수혜지 기대감·투자열기도 덩달아
  4. 4'한강 사건' 피의자 장대호 신상공개 결정... 경찰 曰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 때문"
  5. 5장대호, 과거 인터넷에 올린 글 화제..."손님들 머리 꼭대기서 쥐고 흔들어야"
  6. 6‘향년 50세’ 이용마 기자 복막암으로 별세…복막암 증상 살펴보니
  7. 7광복동 먹자골목 풍경이 바뀐다…중구, 입식 매대로 시설 교체 추진
  8. 8공지영 SNS에 조국 지지 게시물 올려...괴벨스의 발언도 인용해
  9. 9조국 딸 고교생 시절 의학논문 ‘제1 저자’ 논란… 인턴 면접도 도마에
  10. 10조국 딸 장학금 교수, 올 초 부산대병원장 공모 때 내정설 파다
  1. 1꼴찌팀의 작은 위안…‘영건 듀오’(서준원·고승민)의 발견
  2. 2홀슈타인 킬 이재성, 독일 2부리그 주간 MVP
  3. 3벤투호, 내달 6일 조지아와 평가전
  4. 4졌지만 잘 싸웠다…랭킹 212위 이덕희, 세계 41위에 역전패
  5. 5부산 개최 ‘LPGA BMW 챔피언십’, 국내파 30명 출전·상금랭킹도 반영
  6. 6
  7. 7
  8. 8
  9. 9
  10. 10
우리은행
지방분권으로 도시 살린다
대학이 가져온 ‘부’- 독일 하이델베르크
지방분권으로 도시 살린다
친환경에서 캔 ‘노다지’- 독일 프라이부르크
강동진 칼럼 [전체보기]
이기대·청사포가 눈앞서 사라진다면
2030엑스포 개최에 관한 간절한 소망
기고 [전체보기]
부산포해전을 부산대첩으로 격상하자 /서정의
‘문화도시 부산’에 대한 소고 /김배경
기자수첩 [전체보기]
극한직업의 수상구조대 /임동우
옛 해운대역 도시재생 롤모델로 /이승륜
김용석 칼럼 [전체보기]
달에는 토끼가, 지구에는 청룡이 산다
기생충의 세상, 그 우화의 이면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음악문화
전통 가곡인가, 한국 가곡인가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신라젠 쇼크 줄여야 바이오가 산다 /이석주
“한가한 소리 하고 있네” /하송이
도청도설 [전체보기]
자동차 깜빡이
데스 노트
문태준 칼럼 [전체보기]
조선시대 ‘북캉스’ 풍경
데이비드 호크니의 첫 생각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경상도의 여름음식 찜국
품종을 따져라, 밥맛이 달라진다
사설 [전체보기]
신공항 총리실 검증 한 점 의혹 없이 진행되길
대저신도시 과거 실패 되풀이 말고 이번엔 성공을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중앙정부와 지자체 복지 역할 재정립
‘건강보험 하나로’와 문재인 케어
이은화의 미술여행 [전체보기]
예쁘고 행복한 그림의 화가
바람둥이 화가의 영원한 사랑
이홍 칼럼 [전체보기]
일본은 실수했다
창의성, 한국기업의 다음 생존전략
장재건 칼럼 [전체보기]
조국의 ‘서해맹산(誓海盟山)’
두 정치인의 죽음
제언 [전체보기]
광안대교, 해양안전 감시시스템 구축을 /이윤석
조영석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더위 식혀주는 음악들
7월의 음악예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은은한 피노누아 같은 사람
닭백숙과 와인…더위를 이기는 조합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김윤겸의 실경산수 ‘태종대’
김정희를 흠모한 이한복
  • 2019 ATC 부산 성공기원 시민대회
  • 2019아시아 트레일즈 컨퍼런스
  • 사하관관사진공모전
  • 제5회 극지 해양 도서 독후감 공모전
  • 부산관광영상전국공모전
  • 유콘서트
  • 어린이경제아카데미
  • 어린이극지해양아카데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