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유라시아플랫폼을 다녀왔다. 개관(지난 19일) 다음 날이었다. 유라시아플랫폼은 전국 제1호 도시재생 경제기반형 국가 선도사업으로 만든 곳이다. 부산역 일대 원도심 재생의 거점 시설이다. 그런 만큼 부산 원도심의 산복도로를 쏙 빼닮았다. 높고 낮은 요철이 많은 산복도로 풍경을 옮겨놓은 듯하다.
유라시아플랫폼의 개관 기념행사로 ‘2019년 부산 도시재생박람회’와 제7회 마을의 날 축제가 열렸다. 오는 29일까지 ‘2019 부산건축제’도 이곳에서 열린다. 일단 유라시아플랫폼의 콘셉트를 제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세 번째 열린 도시재생박람회의 주제도 ‘시민과 함께하는 도시재생 인(in) 부산’이었다. 부산시와 16개 구·군, 마을공동체, 유관기관 등이 참여했다. ‘이야기가 있는 강서구 신장로 마을’ 등 도시재생의 다양한 모습과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골목문화를 살펴보는 ‘부산골목관찰전’과 ‘피란수도 부산, 피란민의 주거와 삶’ 등 부산건축제의 기획전 역시 도시재생과 맞물려 있다. ‘건축, 소소함의 발견’이 올해 건축제의 주제다. ‘일본의 주거 실험’이란 주제전은 초고령화와 빈집 현상에 관한 고민과 해석을 담아내고 있다. 전시공간의 초입에 있는 ‘영주시민아파트 아이디어 콘테스트 작품전’도 눈에 띈다. 영주시민아파트 부지의 공공임대주택, 공공임대시설, 공공주차장 등을 포함한 건축적 해결 방안에 관한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취지다. 여기에는 6개 팀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유라시아플랫폼은 동구 초량동 부산역 광장에 들어섰다. 이곳의 장소성이 담은 의미는 상당하다. 부산역은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로 묶은 유라시아의 관문이다. 아시아의 끝이자 유럽의 시작점이다. 부산역은 북항 재개발 사업 지역과 원도심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공간이기도 하다. 이와 맞물려 부산역 조차시설 이전 등을 포함한 부산역 일대 철도시설 재배치 사업도 예정돼 있다. 원도심 ‘초량’이 새롭게 태어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셈이다.
‘초량’은 본래 서구 부민동 토성동 일대까지 모두 포함했다. 1906년 이전까지 구(舊)초량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지금의 초량동은 과거 신(新)초량으로 불렸다. 이런 초량은 근대 개항(1876년) 이후 부산의 중심이었다. 그전에는 동래 일원의 내륙이었다. 개항장 초량은 물자와 사람이 활발하게 오갔던 곳이었다. 100년 넘게 물류와 수산업의 본류 역할을 했다. 초량에서 객주업도 활발했다. 1900년에 모습을 드러낸 초량의 남선창고가 대표적이다. 함경도의 명태 등을 배로 싣고 와서 보관하던 최초의 물류창고였다. 이런 초량은 근대 개항 이전에도 국제교류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조선 속의 작은 일본’ 왜관이 그것이다. 1607년부터 지금의 동구 수정시장 인근에 70년 넘게 두모포왜관(고관)이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당시 조선과 일본 간 외교 무역 등 교류 관계는 왜관에서만 이뤄졌다. 두모포왜관은 1678년 현 용두산공원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근대 개항 때까지 존속한 초량왜관이다. 왜관은 짧게는 270년, 길게 보면 470년간 초량에 있었다.
유라시아플랫폼은 이런 역사성과 장소성을 담은 초량에 있다. 유라시아플랫폼이란 그릇에 담을 콘텐츠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출발부터 걱정이 앞선다.
부산시는 유라시아플랫폼을 ‘개방형 공공서비스 플랫폼’으로 꾸릴 예정이다. 청년 스타트업을 포함해 ▷코-워킹(co-working, 독립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협업하는 것) ▷메이커 스페이스(다양한 재료로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즉석에서 만드는 작업 공간) 등 4차 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는 혁신 공간으로 삼겠다고 한다. ‘일자리 창출 생태계’와 ‘창업 밸리’ 조성, 창업자와 투자자, 기업, 대학·연구기관이 협업할 ‘혁신창업 클러스터’로 발전 등 기대감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다. 정작 이곳에 입주할 스타트업은 아직 한 곳도 없다. 이런 지적이 제기되자 시가 대책으로 내놓은 게 부산역 인근 건물의 빈 사무실을 사들여 스타트업을 입주시키는 것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부산역의 유라시아플랫폼은 보안 유지가 필요하고 조용해야 하는 업무 공간으로 적절치 않다는 게 그 이유다. 그렇다면 유라시아플랫폼은 창업 밸리의 핵심 시설이 아니라는 얘기인가. 유라시아플랫폼의 국제설계 공모를 한 것은 2015년 7월, 공사기간은 2017년 3월부터 2년5개월간이다. 출발점은 ‘부산역 광장 일원 도시재생 경제기반형 선도지역’으로 지정된 2014년 5월이니 5년이 더 흘렀다. 그 사이 콘텐츠에 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라시아플랫폼에는 39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돈도 돈이지만, 역사성과 장소성에 걸맞은 콘텐츠로 채워 유라시아플랫폼이 하루빨리 자리 잡길 기대한다.
편집국 부국장 inm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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