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태풍이 잦다. 이러한 날씨에 비상이 걸린 곳 중 하나가 문화예술 분야다. 가을에는 야외에서 진행되는 행사도 많지만, 올해 태풍이 유독 휴일만 골라서(?) 오는 바람에 개막식 같은 주요한 프로그램이 차질을 빚고 있다.

다행히도 부산국제영화제는 개막식을 무사히 잘 치렀으나, 전야제는 태풍으로 취소했다. 지난해에도 태풍 피해가 있었기에 올해는 야외행사를 모두 실내에서 치렀고, 안전을 기원하는 고사도 지냈다. 다대포해수욕장에 전시된 2019 바다미술제도 태풍에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전시기간이 이달 말까지이니 긴장을 풀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표적인 축제 행사는 물론이고 지역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들도 취소되거나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아는 사람이 기획하는 행사는 더욱 남의 일 같지 않다. 청년, 인디 문화의 상징인 부산대 앞 제로페스티벌이 그러한데, 지난달 말, 이달 초를 거쳐 오는 18일로 두 차례나 연기하였다. 축제를 준비하는 이들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한다.

야외 행사뿐만 아니다. 실내 행사도 관객 동원 등에서 영향을 꽤 받는다. 지난달 말 중앙동 곳곳에서 펼쳐진 40계단 예술교육영화제도 태풍으로 힘겹게 치러내야만 했다. 태풍 ‘타파’가 부산에 상륙한 날,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악조건 속에서도 원도심이 가진 매력과 저력을 느끼게 해 준 주최 측과 찾아온 관객 분들에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날씨가 좋았다면 더욱 빛난 행사였을 것이다.

문화예술 행사는 날씨에 민감하다. 실내에서 개최되는 행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일 날씨에 따라 참여자 수에서부터 출연자의 기분, 현장의 공기까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영향을 받는다. 당연하게도 야외 행사는 개최 시기를 정하는 일부터 날씨가 중요한 고려 요소다. 평균적인 기온은 어떤지, 장마나 태풍이 빈번한 시기는 아닌지를 살펴보면서 기획을 시작한다. 그러다가 1~2주 전부터는 날씨가 어느 정도 예측되므로 그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예컨대 갑자기 더워지거나 추워지는 경우에 대비한 물품 준비들, 비나 강한 바람 소식에 따른 대체 장소의 물색과 안전 대책 등 플랜-B를 마련해둔다.

이런저런 행사를 진행해 오면서 경험한 가장 힘든 날씨 대응은 어설프게 비 소식이 있을 때다. 차라리 비가 많이 온다고 예상이 되면 선택지가 확 줄어드는데, 비가 약간 온다거나, 내리다 말 것 같다면 너무나 많은 대응 방법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천막이나 비옷 정도를 준비해두고 그대로 진행할지, 혹은 무대를 변형시키거나 실내로 옮기거나 또는 취소나 연기를 할지 등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이 시작된다.

한번은 오전 중 잠깐 비가 오다 말 것 같아서, 프로그램 시간을 오후로 미루는 정도면 그럭저럭 무리 없겠다고 판단해서 행사를 추진한 적이 있다. 행사일이 다가오면서 종일 비 내리는 소식으로 서서히 바뀌더니, 강수량도 예상보다 더 많이 예측되면서 마음이 초조해졌다. 새벽에 자다 깰 때도 날씨 애플리케이션(앱)을 먼저 열어보았다. 폰에는 날씨 앱이 3개가 있는데, 서로 예측이 미세하게 차이가 나면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역시 쌓은 덕이 부족했던 탓인지, 예보대로 새벽부터 비가 시작되었다. 추진하기로 결정했던 만큼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음에도 빗물은 빠르게 속을 파고들었고, 금세 심장이 덜커덩 내려앉아버렸다. 당시 타 들어가던 속이 여전히 그을음으로 남아 있다.

이번 주에도 다양한 야외행사가 진행 된다. 또 온다는 태풍 소식에 노심초사할 문화기획자가 많을 것이다. 작은 행사라도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적지 않은 비용이 문제가 되기에 변경을 결정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문화예술 행사는 유형의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특정의 시·공간 속에서 존재하기에, 바로 그때, 그곳이 아니면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기획자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부디 맑은 하늘이 선물처럼 열리길 바란다.

플랜비문화예술 협동조합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