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에 도입된 DNA 지문(DNA fingerprint) 감식방법은 사람마다(일란성 쌍둥이도) 지문이 다르듯이 DNA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원리를 이용한 분석법이다. 처음 DNA 지문 감식방법을 이용한 사건은 유명 미식축구 선수 오제이 심슨 사건으로, 이를 통해 DNA 지문 감식방법이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1992년 이후 DNA 지문 감식방법으로 70명이 넘는 죄수의 결백을 입증하여 그들을 석방시켰는데, 이 ‘무죄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어느 변호사는 DNA 지문을 ‘결백의 황금저울’이라고 불렀다.

DNA 지문 감식방법은 DNA 일부분 만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유전체 분석과는 다르다. 유전체 분석법은 세포의 핵 속 염색체들을 구성하는 모든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는데, 이 방법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므로 감식방법으로는 실질적이지 못하다. DNA 지문 감식에 이용되는 샘플로는 혈액, 적은 흔적이라도 남아 있는 정자, 면봉으로 채취한 구강표피, 휴대전화에 묻어 있는 침 흔적, 한 개의 머리카락 뿌리 등이 있다. 머리카락 뿌리를 이용하는 방법은 독일 범죄수사국에서 개발하였으며, 이 방법을 이용하여 2001년 9·11 사태 때 뉴욕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누구인지 찾아낼 수 있었다.

아주 적은 양의 혈액이나 조직을 수집하더라도 DNA 지문 감식을 위한 충분한 양의 DNA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감식 결과를 알 수 있다. 이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중합효소연쇄반응)이라는 특정 DNA 단편을 빠르고 정확하게 복제할 수 있는 기술 덕분인데, 몇 시간 내에 하나의 DNA 분자에서 시작하여 1000억 개 이상의 DNA 분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DNA 지문 감식방법에는 일반적으로 VNTR(variable number of tandom reapeats)이라는 유전자 분석법을 사용한다. 이때 ‘tandom reapeats’란 ‘지루하게 반복된다’는 뜻이다. 즉, VNTR은 같은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수가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의 유전체에는 짧은 특정 DNA 서열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부위가 여러 곳에 존재한다. 사람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염기서열을 가지지만 반복되는 수가 다르다. 보통 4개의 DNA 염기가 일렬로 3~50번 반복되어 있다. 이들 반복 DNA의 길이는 무관한 사람 사이에서보다는 혈연관계인 사이에서 더 잘 일치한다.

DNA 지문 감식방법은 친자확인에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아들에게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면 DNA 지문을 서로 비교하여 친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 생물학적 부모일 때 어머니 DNA 단편과 아들 DNA 단편은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하고, 어머니 DNA 단편과 일치하지 않는 다른 DNA 단편의 위치는 아버지의 것과 일치해야 한다. 아버지 DNA 단편과 아들 DNA 단편 위치가 일치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다.

DNA 지문 사용은 범죄수사나 친자확인 그 외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심지어 DNA 샘플이 부분적으로 분해된 상태라도 가능하다. 오래된 미라나 화석에서 얻은 DNA 일부분으로 현존하는 생명체와 비교하는 진화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2005년 한 연구진은 2만7000년 된 시베리아 매머드로부터 추출한 DNA가 아프리카 코끼리의 DNA와 98.6% 같다고 발표하였다. 요즘은 캐시미어 스웨터가 실제로 캐시미어 염소에서 얻은 것인지, 일반 양에서 나온 것인지를 확인하는 섬유분석도 가능하다. 또한 밀거래된 동물생산품의 출처를 결정적으로 찾아내어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싱가포르에서는 코끼리 상아를 압수·분석하여 밀렵 장소를 정확하게 알아내었고, 싱가포르 정부에서는 감시를 더욱 강화하였다.

DNA 지문은 범죄현장에서 용의자를 가려내고, 테러나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식별에 유용하게 이용된다. 하지만 검사 결과가 사회적으로 악용되거나 사생활 침해에 이용될 수 있으므로 DNA 지문 이용 시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인제대 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