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국회에서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했다. 취임 후 네 번째 국회 시정연설이다. 정부가 편성한 513조 원의 초슈퍼 예산안을 설명하고 국회 협조를 당부하는 것이지만, 시국이 시국이고 집권 후반기라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연설내용에 더 관심이 모였다. 34분간 이어진 그의 연설은 경제, 공정, 개혁에 방점이 찍혔다. 연설문을 키워드로 분석해 보면 경제 29번, 공정 27번, 혁신 20번, 검찰·개혁 18번, 포용 14번, 평화 11번이 각각 언급되어서다.

경제 분야에서는 예견됐듯이 재정의 역할이 재차 강조되었다. 미중 무역분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세계 경제 악화로 우리 경제가 엄중한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은 2%를 넘을지 불투명하고, 내년에도 소폭 개선에 그칠 전망이다. 따라서 재정이 대외 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가 돼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언급에는 별 이견이 없지 싶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세계적인 경기 하강을 극복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과감하게 늘릴 것을 주문하는 형국이다.

그도 그렇지만 예산안이 실효성 있게 잘 짜였는지를 국회가 철저히 검증하는 건 기본 중 기본이다. 예산안이 경제 활력을 살릴 수 있도록 국회가 심의기능에 전력을 다하고, 큰 틀에서 초당적 협력에도 나서야 옳다. 경제 살리기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특히 일자리, 저성장과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같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극복에 힘을 모으는 게 필요하다. 그 점에서 야당은 엄격하고 냉철하게 따지되 당리당략에 너무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공정과 개혁은 시대적 대세다. 그만큼 국민적 열망이 높다. 문 대통령의 지적이 아니어도, 우리 경제·사회·교육·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되고 공정을 위한 개혁이 이뤄져야 마땅하다. 여기에는 국회의 관련 입법과 여야정의 대승적 협치가 핵심적 요소다. 아울러 대통령이 더 낮은 자세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시정연설 말미에서 “더 많이, 더 자주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회와 함께하고 싶다”고 공언했다. 그게 빈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