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면서 전 세계가 들썩였고 한국은 여지없이 열등감에 시달렸다. 아마도 항상 경쟁의식을 가지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 또 수상자가 나왔기 때문에 더 우울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올해 요시노 아키라가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벌써 25번째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과학 분야 노벨상은 전무하다. 도대체 한국과 일본의 이 같은 격차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올해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한국연구재단에서는 노벨상에 근접한 ‘한국 연구자’ 17명의 명단을 발표해 구설에 올랐다. 심지어 선정기준도 노벨상과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았다. 지난달 11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모 국회의원이 우리나라가 노벨과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로 연구자들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꼽았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많은 과학자가 한국이 노벨 과학상을 받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언론 기고를 통해 밝힌다. 하지만 한국의 과학계를 좌지우지하는 정책결정자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인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기초과학을 천시하는 풍조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응용 분야를 선호한다. 대부분의 연구계획서에는 연구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써야 해서 순수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은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두 번째로 노벨상은 단기간의 투자를 통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20년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연구를 시작한 후 노벨상을 받기까지는 평균 3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노벨 과학상 수상을 위해서는 기초과학 분야에 오랜 기간 투자를 해야 하고 과학자들이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세 번째는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요시노는 인터뷰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단기간의 가시적 성과보다는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과학자들은 보통 연구재단을 통해 3년짜리 연구과제를 수행하는데, 연구 기간 내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연구비가 삭감되거나 후속 과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빨리 게재하는 데 급급하다. 이와 같은 조급함은 어쩌면 급속한 경제성장의 부작용일지 모른다. 대다수의 선진국이 기초부터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 서서히 성장해온 반면, 한국은 반도체의 경우와 같이 특정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간단계 진입’ 전략을 성공적으로 사용해 왔다. 초기 단계를 건너뛰기 때문에 빠른 성장이 가능했지만 과정과 윤리보다는 성과와 결과를 중요시하는 풍토가 만연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독일의 막스플랑크와 일본의 이화학연구소(RIKEN) 같은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소를 표방하며 2011년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설립했다. IBS 사업단은 연간 약 100억 원의 연구비를 10년간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IBS의 설립 취지는 ‘인류의 행복과 사회 발전에 공헌’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노벨상에 근접한 대형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효율이나 투자의 측면에서 볼 때 IBS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공계 기초과학 분야 연구과제 규모가 보통 5000만 원에서 1억 원 정도이니 100억 원이면 매년 100~200명의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다.

과학사를 돌이켜 보면 당초의 연구목적과는 관계없이 우연히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진 사례가 많다. 과학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호기심이다. 젊은 과학자들이 단기간의 성과는 얻을 수 없을지라도 단지 궁금한 점을 해결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며 노벨상은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