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19혁명, 한국전쟁 그리고 경술국치엔 공통점이 있다. 1980년 경신년(庚申年), 1960년 경자년(庚子年), 1950년 경인년(庚寅年), 1910년 경술년(庚戌年) 등 모두 육십갑자의 천간(天干),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가운데 일곱번 째인 ‘경’ 자가 들어간 해이다. 육십갑자는 천간과 지지(地支),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가 어울려 60개 조합을 완성한다.

최근 100여 년을 거칠게 훑어보면 어느 한 해 다사다난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특히 ‘경’ 자 해에 만만찮은 곡절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가을 서릿발 같고,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경’의 성질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한다. 내년 2020년은 4·19혁명 이후 60년 만에 돌아오는 경자년이다. 이 때문에 ‘내년엔 무탈한 한 해를 보내야 할 텐데’라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적신호가 켜진 경제, 총선이라는 정치 일정표와 북미 관계 등이 변수다.

이렇게 새해를 전망하는 관점의 호불호를 떠나 혁신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예도 얼마든지 있다. ‘어느 구름에 비가 올지’라는 속담이 있다. 다산 정약용은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에 실으며 ‘부지하운종우기운(不知何雲終雨基云)’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언제 어떻게 될지 미래의 일에 대해선 알 수 없다는 의미겠다. 누구도 정답을 내놓을 순 없지만, 통찰력을 가진 이는 그 구비진 세상의 희미한 흐름을 밝힌다. 이맘때쯤 서점에 내년 이후를 전망하는 책이 쏟아지는 까닭이다.

기술 변화가 삶의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며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두고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은 사회 기술 환경 인구 정치 경제 자원 7개 분야로 나누어 설명한다. 해마다 핫한 유행어를 만들어낸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자기계발형 인간인 ‘업글인간’, 능동적 소비인 ‘팬슈머’, 신중년층을 상징하는 ‘오팔세대’ 등에 주목한다.

소비 트렌드 변화의 키워드로 ‘외로움’을 내세운 마크로밀 엠브레인 연구진의 ‘2020 트렌드 모니터’, 1인용 삶에 초점을 맞춘 빅데이터 분석기업 다음소프트 생활변화관측소의 ‘2020 트렌드 노트’도 눈에 띈다.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 생산 투자 고용의 주축이 되는 밀레니얼 이코노미 시대, 한국의 변화는 ‘밀레니얼 이코노미’가 분석했다.

그런데 다산이 인용한 속담엔 간절한 민심이 담겨 있다. 생각해 보라. 하늘에 의지해 농사를 지었던 민초의 삶을. 때에 맞춰 비가 오고 해가 나야 농사가 된다. 이런 민심의 현대판 버전이 여론조사다. 최근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 임기 후반기 최우선 국정과제를 물었다. 리얼미터가 지난 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그 결과는 경제 활성화 41.1%, 권력기관 개혁 24.0%, 국민통합 9.8%, 공정사회 실현 9.2%, 한반도 평화·안보 7.8%, 양극화 해소 5.4% 등 순이었다. 이런 내용을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얼마나 귀담아 듣는지 의문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일요일 임기 후반기를 여야 5당 대표와의 만찬 회동으로 시작했다. 이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상조 정책실장, 정의용 안보실장 등 청와대 ‘3실장’도 출입기자단과 간담회를 열었다. 야당 대표들은 위기에 빠진 경제에 정책 전환이 필요하며,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에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도 경제 관련 법안의 신속 처리를 당부하는 선에서 그쳤다. 오히려 3실장 간담회에선 민생경제 등과 관련한 정책 노선 수정 대신 현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 전반기 성적표 가운데 경제 분야는 낙제점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 오히려 영세사업자를 힘들게 한다. 규제와 반기업 정서 탓에 기업인의 사기가 바닥이다. 1% 선에 머물 것으로 보이는 경제성장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일자리 정책, 역대 최장의 수출 마이너스 기록, 양극화 심화 등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은 소득분배 개선과 가계소득 증가로 내수 중심의 경제 활성화를 꾀한다. 국내외 경기 변화에 맞춰 정책 전환이 필요하지만 오불관언임이 확인된 셈이다.

‘경자년 가을보리 되듯’이란 속담이 떠오른다. 경자년에 가을보리가 제대로 익지 못하여 보리의 모양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뜻으로, 사람이나 사물이 잘될 듯이 보이다가 보잘것없이 되어 버림을 비웃는 말이다. 민심은 경자년 가을보리가 싫다는 쪽으로 수렴되고 있다. 적어도 경제는 민심을 따라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