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13년(1558년) 대구의 사족 유유(柳游)는 아버지와 갈등 끝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564년 채응규(蔡應珪)란 자가 유유를 자칭하고 나타났다. 그는 유씨 집안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동생 유연(柳淵)은 그가 가짜인 것을 알고 대구부(大丘府)에 고소했다. 채응규는 심문을 받던 중 달아났다. 남은 일은 간단했다. 도망한 채응규를 잡아와 사기극 전모를 밝히든지, 잡지 못할 경우 사기꾼의 어설픈 가짜소동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사건이 엉뚱하게 흘러갔다. 유유의 아내 백 씨가 유연이 재산과 장자권(長子權)을 노려 형을 가짜로 몰다가 급기야 살해했다고 고소했던 것이다. 조사 담당인 대구부에서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사간원 대사간 박계현이 형을 죽인 동생에 대한 조사를 대구부에서 미적대고 있다고 명종에게 말한 것을 계기로 사건은 사기극에서 친족 살인으로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박계현의 말을 전환점으로 형을 죽인 살인범이 된 유연은 서울로 압송되어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의금부는 유연의 살인 여부를 조사하는 곳이 아니었다. 의금부의 심문은 살인을 했노라는 자백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먼저 유연의 노비들을 심문했다. 당연히 고문이 따랐다. 노비들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유연이 유유를 살해했다고 말했다. 유연이 옥사장 등에게 면포(綿布)와 소를 뇌물로 주어 채응규를 혹독하게 다루는가 하면 끌어내 죽이는 데 협조했다는 날조였다. 나아가 유연이 유유의 머리를 부수어 금호강에 던졌다고도 말했다.
의금부는 정말 뇌물로 면포와 소를 주고받았는지, 그것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현재 어디 있는지 등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증거물을 확보해야만 하였다. 하지만 그런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신을 버렸다는 금호강에는 가보지도 않았고, 당연히 시신이나 혈흔을 찾는 일도 없었다. 노비들의 날조된 증언은 실제 일어났던 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수사라고 할 만한 절차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일은 유연을 심문해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유연으로서는 허위 자백은 죽음을 의미하므로 당연히 완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의금부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의금부에서는 처음에는 평문(平問)을 하였다. 곧 말로만 심문했다. 그런데 평문 과정에서 바라는 진술이 나오지 않을 경우, 형신(刑訊) 곧 형장(刑杖)을 치는 고문이 따르는 것이 통례였다. 고문을 통해 자백을 받아내면 사건의 최종 결론인 결안(結案)이 작성됐고, 결안에 따라 처벌 종류와 수위를 결정하는 조율(照律)이 이뤄졌다. 유연에게도 당연히 형장이 집행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은 고문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두었다. 신장(訊杖)은 1회에 30대 이상을 칠 수 없고, 한 번 치면 3일 안에 다시 칠 수 없었다. 또한 무릎 아래를 치되 정강이에는 닿지 않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유연은 형장이 42도에 이르자 거짓 자복을 했으니, 30대란 규정은 처음부터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의금부는 자백을 얻어낼 때까지 계속 장형을 집행했던 것이다.
유연은 거짓 자백을 한 뒤 1년만 사형을 유예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 1년 동안 채응규와 유유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추국(推鞫)의 총책임자 심통원(沈通源)은 ‘이렇게 지독한 놈이니 형을 죽인 것도 당연한 일’이라며 기왓조각으로 유연의 입을 치게 했다. 법에도 없는 폭행이었다.
유연은 열흘도 지나지 않아 친형을 살해한 죄로 능지처사(陵遲處死)에 처해졌다. 그로부터 16년 뒤 유유가 나타났다. 채응규는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는 도중 자살했다. 이 탓에 채응규가 벌인 사기극의 전모를 밝힐 수 없었지만, 유연이 억울하게 죽은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유연을 고문하고 사형을 선고한 사람 중 그의 억울한 죽음에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억울한 죽음을 계기로 고문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발언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고문은 그대로였고 사법제도 역시 바뀌지 않았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거 조선의 연장이다. 어떤가? 우리 보통의 국민은 현재 한국의 사법제도에 모두 만족하시는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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