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빼어난 인물이 나는 경우를 이른다. 1975년 17회 사법시험 때였다. 합격자 60명 가운데 단 한 명이 고졸이었다. 그는 훗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됐다.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사법고시가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된 대표적인 사례다. 옛날에는 그랬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신은 배를 굶주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자식 공부를 시켰다. 일단 고시에 합격하면 열쇠를 몇 개나 든 혼사처가 줄을 서니까.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단군 이래 최고의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요즘이라고 하지만,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례는 1950~1990년대가 훨씬 많았다. 물론 고시는 용꿈을 꾸며 평생 ‘백수’로 사는 낭인을 낳는 부작용도 있었다.

이런 사법고시는 노무현 정부 때 폐지가 결정됐다. 아이러니다. 신분상승의 사다리 하나가 사라졌다는 말이 나왔다. 대신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됐다. 로스쿨은 ‘현대판 음서제’란 비판을 받았다. 등록금이 비싼데다 배경에 따라 대형로펌이나 공직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대학 입시도 마찬가지다. 입시는 신분상승의 통로로 여겨졌다. 불평등이 심화하는 현실에서 자기계발이라는 교육의 목적은 사치다. 높은 계층에 오를 수 있는 지위 선점이 먼저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하다. 좋은 대학과 학과에 들어가려고 목을 맨다. 어찌 보면 시험 자체가 그렇게 인식된다. 주변 스펙이 없는 이에게는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시험은 민주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 입시가 정시보다 수시 중심으로, 특히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선점할 기회가 적어졌다.

이렇게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줄어들면서 계층의 고착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국민의 64.9%가 평생 노력해도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가 있었다. 자식 세대에서도 계층 상승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55.5%였다. 10년 전 조사보다 각 19.3%포인트, 25.7%포인트나 높아진 수치다. 통계청의 ‘2019년 사회조사 결과’다. 참 서글픈 조사 결과다. 이런 식이면 개천에서 용이 될 꿈조차 꾸지 못하는 사회가 될까 봐 걱정된다.

불평등은 수준이 아니라 차이의 문제다. 그 차이가 클수록 사회적 갈등은 심하다. 당연히 사회 경쟁력도 갉아먹는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심화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