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에서 곡식을 선별하고 곡식에 섞여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농기구 ‘키’를 사용했다. 키에 곡식을 담고 앞뒤로 흔들어 주면, 가벼운 껍질이나 불순물은 날아가거나 앞으로 모이고, 뒤쪽으로는 곡식만 남아 쉽게 불순물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처럼 ‘키’가 촘촘하게 짜여야 곡식 알갱이만 잘 선별할 수 있듯, 기상관측에서도 촘촘한 관측망이 짜여야 기상정보의 질이 향상되고 기상예측이 향상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도심에서 기상관측 장비를 설치할 장소를 찾기란 쉽지 않다. 기상관측장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적정 넓이의 고르고 평탄한 장소이면서 주변 건물, 나무로부터 바람·기온·강우 관측을 방해받지 않아야 하는 조건이 만족돼야 하는 탓이다. 또한, 기상청이 기상관측 장소를 선정할 때 해당 지역 기후 특성을 대표하는 장소인지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관측 장비는 고정된 위치에서 그 지역의 예보와 특보 운영에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기상관측 자료를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과 부산 기상관측소가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선정한 100년 관측소로 인정받았듯, 기상관측 지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장소에서 반영구적으로 운영된다.

인구의 도시 집중화가 계속되고, 날씨가 국민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도도 점차 커지면서 지역사회가 기대하는 기상정보 서비스 수준 또한 함께 높아진다. 이 때문에 예전처럼 도심 주변에 정규 관측지점을 늘리기보다는 특정 시기, 이를테면 태풍 폭염 집중호우 등이 발생했을 때 바람 기온 강우 관측을 보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인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상청에서는 ‘모바일 기상관측차량’을 운영하고 있다. 모바일 기상관측차량은 이동하면서 기상 현상을 관측할 수 있는 최첨단 장비를 갖춘 차량이다. 지상에서부터 상층까지 기온·바람·습도·기압 등을 관측하고 현장에서는 전광판을 통해 기상실황을 표출한다. 생산된 관측자료는 무선단말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기상청 예보관에게 전달되어 예보와 특보에 활용된다.

또한, 모바일 기상관측차량은 산불이나 태풍 등 위험기상 현상이 발생했을 때 더욱 그 역량을 발휘한다. 산불이 나면 모바일기상관측차량은 현지의 기상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 및 분석하여 헬기를 이용한 산불 진화의 적정 시기를 제시할 수 있다. 실제 지난 4월 강원도와 부산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에 모바일 기상관측차량이 배치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올해는 전례 없이 우리나라에 7개의 태풍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태풍 등 위험기상 상황은 현장에서 기상실황을 감시하는 것이 재난 피해 예방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기상 지역에 기상관측소나 관측장비가 없다면 정확한 기상실황을 감시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태풍 발생 당시, 모바일 기상관측차량이 이러한 지역을 찾아다니며 관측 자료를 생산하여 태풍으로 인한 강풍과 호우 피해를 예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상청이 그동안 이루어 온 지상·해양·고층·위성 레이더·관측망과 더불어 모바일기상관측차량은 언제든 관측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출동하는 기상관측’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해 나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오늘도 모바일 기상관측차량은 위험기상과 국가재난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국민과 지역사회 곁에서 언제든 필요한 곳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모바일 기상관측차량의 활약이 위험기상 속에서 기상재해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기상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