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옷이 아닌 듯하다. 남의 옷을 입은 것 같다. 짧은 머리에 콧수염은 자신의 약점을 의식한 반작용으로 보인다. ‘범생’의 이미지를 벗으려는 듯. 거친 언행은 강력한 리더십의 왜곡된 표현 같았다. 의도된 카리스마라고나 할까. 평생 일탈이라고는 해보지 않았을 듯했던 그였기에 낯설어도 너무 낯설었다.

한때는 절제된 몸가짐이 장점이었는데. 안정감 있다는 평가는 차기 대권 주자가 갖춰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하지만 감동을 주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 최고 엘리트의 법조인 출신에 국무총리 대통령권한대행까지 한 이력은 대중에게 거리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거리로 뛰쳐나온 걸까. 기존 질서를 거역하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잇단 강경 행보에서는 조급함까지 느껴진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변신이 필요한 건 맞다. 야당 대표는 여당 대표와 행보가 달라야 한다. 여당은 지켜야 하지만, 야당은 흔들어야 한다. 자기주장을 드러내지 않는 건 살아남는 데 유리하지만, 쟁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흔든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기준과 원칙이 중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가지려고 하는 게 잃는 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무엇을 하려는 사람보다 가만히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운 7’ ‘복 3’이라고 하지 않나. 과도한 자기주장은 고집불통의 이미지를 줄 수 있다.

게임의 법칙은 그렇다. 상대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더 많다. 역사의 교훈을 통해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래서 리더에게는 참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기다리고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대권으로 가는 길목은 정글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참고 기다리겠나. 아차 하는 순간 잡아먹힐 것 같은데. 정말 예삿일이 아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떠올려본 생각들이다. 장외로만 가는 그의 모습이 낯설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원외의 한계 탓일까. 대화와 협상, 의회주의는 그의 행보에서 사라졌다. 대신 자리 잡은 게 삭발 단식 장외집회 등등. 강경투쟁에는 막말이 난무한다. 방식은 기존 질서와 제도권을 이제 부정하겠다는 듯이 거칠다. 국회의사당 앞 폭력 집회는 충격이다. 그런 집회 참석자를 “고생했다” “승리했다”며 격려하는 모습에서는 ‘형님’의 포스를 연출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게 한다.

이런 식의 장외 투쟁은 일부 극우 세력에게 카타르시스를 줄지는 모른다. 우측 극단으로 가서 좌측 극단과의 갈등과 대립 구도를 만드는 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지지층은 결집한다. 하지만 황 대표의 최대 강점인 안정감과 신뢰감에는 치명적이다. 통합과 안정을 바라는 많은 국민의 신뢰는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세상에 가득 찬 모순과 갈등을 헤쳐나갈 비전과 희망은 고사하고 더 심화시킬 것 같아서다. 이래서야 중간에서 방황하는 대중의 믿음을 얻을 수 있겠나.

장외 투쟁뿐만 아니다. 당내 행보도 마찬가지다. 황 대표는 요즘 법무부 장관이란 이력이 주는 원칙주의 이미지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행보를 거침없이 한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직책 연장을 하지 않는 과정만 해도 그렇다. 의원총회라는 절차와 권한을 무시하고 최고위원회의가 결정하는 무리수를 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장면은 황 대표가 당권 장악에만 몰두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의원총회 때 국회의원에게 졸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많이 놀랐다. 권위주의 냄새가 나서다. 게다가 주요 당 보직은 ‘친황계’ 인사가 상당수 차지했다. 이런 황 대표의 독주에 불만을 가진 의원들이 생겨나는 건 당연하다. 그만큼 황 대표의 리더십을 의심하는 층은 늘어난다. 당내 균열은 고질적인 계파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침몰로 가는 전형적인 내분의 조짐이다.

20대 청춘은 청년 실업으로 고통받는데, 자영업자는 최저임금 문제로 불만이 폭발 직전인데, 이들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하는 이유가 뭘까. 대안 정당으로서 신뢰성을 의심받은 탓이 아닐까. 당 지지율이 정부의 악재 때에는 반짝 상승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현상이 반복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정권을 맡겨도 될 것 같다는 믿음을 대중에게 주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보수는 따뜻한 밥만큼은 더 많이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 한다.

무릇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득이 있으면 실이 있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선택은 리더의 중요한 자질이다. 선택 기준은 국민이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다수의 국민이어야 한다. 극단은 좋지 않다. 우든, 좌든.

논설위원 sbjung @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