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이 빈다. 가뜩이나 인구가 줄 거라는 데도 온 나라 곳곳에 신도시를 만들고 무지막지한 아파트로 채워가고 있다. 무슨 캐슬에 엄청 편한 세상이라 뽐내는데 그건 저들만의 세상이다.

고개만 들면 하늘을 덮은 전설 속 불가사리(쇠를 먹고 자란다는 상상의 동물. 곰의 몸, 무소의 눈, 코끼리의 코, 소의 꼬리, 범의 다리를 한 모습과 닮았다고 한다) 환영에 가위눌린다. 전설의 불가사리는 한 마리가 난동을 부리지만, 오늘의 아파트는 난감하게도 어둠 속에서 우후죽순처럼 불거져 솟고 꺼진다.

도시재생사업이란 명목으로 이 기관 저 기관 경쟁하듯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거점시설을 꾸미고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쓸어버리고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그간 우리가 쏟은 노력과 애정은 벌겋게 단 철판에 던져진 물 한 방울처럼 증발하고 없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그야말로 게딱지 집에 여러 식구가 끼어 살았다. 한여름이면 땀을 줄줄 흘리며 모기한테 진탕 뜯겨야 했고 한겨울이면 웃풍이 휘감는 손바닥만 한 방에서 대여섯 식구가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했다. 몸부림 심한 식구라도 있을라치면 자다가 일어나 이불을 끌어당겨야 했다.

때로 연탄가스에 중독된 채 엉금엉금 기어 나와 동치미 국물을 들이켜고 겨우 추슬러 학교로 가곤 했다. 가스에 중독되어 죽기도 했지만, 웃풍이 세다는 건 달리 환기가 잘된다는 뜻이어서 다행이기도 했다. 다들 그리 사는 게 당연했다. 어려운 살림이 빤히 드러나 있었지만 사람 사는 정이 도타웠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돈을 벌어 이 동네를 벗어나는 게 무엇보다 성공한 삶이었고 목표였다. 결혼해 너른 신도시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예전과 다른 근대화된 삶을 영위하는 게 뿌듯했다. 인사차 부모를 뵈러 옛집에 들르지만 여기 돌아와 살 마음은 전혀 없다. 그때의 추억을 자랑처럼 들먹거리지만 세련된 지금의 삶이 훨씬 편하고 좋다. 아파트 생활은 무엇보다 주차가 수월하고 신경 쓸 게 없어서 마냥 좋다.

이제 옛 도심은 노인들과 비싼 월세를 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만 남았다. 그네들은 정든 옛집과 익숙한 생활이 좋다. 그렇게 남은 생을 살다가 하나둘 돌아가면 빈집으로 남는다. 지적도와 앉은 집이 다르고 옆집과 서로 기대 있어 현행 건축법상 새로 지을 수도 없는 집이 많아 손을 대기도 어렵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입장에서는 집값도 얼마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재건축이라도 하면 돈이 좀 되겠지 하는 기대감에 그냥 내버려 둔다. 쓰레기가 쌓이고 길고양이들의 아지트로 기능한다. 이게 오늘의 도심 주거지 모습이다.

왜 우리 아들들이 도심에서 살지 않을까? 여기에 자본의 농간이 들어 있다. 한적한 교외의 논밭을 깔아뭉개고 아파트를 지어 파는 게 훨씬 큰 이득을 몰아주었고 또 아파트를 유용한 서민의 투기처로 여긴 시민과 배알이 맞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 최고의 학군, 지하철 몇 분 거리라고 광고하는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 모델하우스에 줄을 서고 떼로 광고지를 돌린다.

옛 도심에 돈을 쏟아붓고 도시 재생을 도모한다고 해서 우리 아이들이 돌아올까? 유인책이 멋져 꼬여 온 젊은이들로 마을이 북적거리게 될까? 아니 이런 방식의 도시 재생이 과연 가능한 일이기나 한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구는 점점 줄고 있는데? 아파트를 짓는 만큼 그들이 살고 있던 지역이 빈다. 날이 갈수록 더 크게 빌 거다. 그런데도 지금 이 시각, 여전히 논밭을 뭉개고 산을 깎아 택지를 조성하는 미친 짓을 하고 있고 또 한편에서는 선진 도시재생 사례를 떠벌리고 있다.

머잖아 이 고층 아파트도 낡게 되면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생겨날 거다. 단독주택은 사람이 살지 않더라도 그만이지만 아파트는 빈집이 많아지면 관리가 불가능해진다. 한두 단지도 아닌, 천지에 널린 아파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과연 있을까?

전설에서는 불가사리를 죽이기 위해 쇠붙이로 유인한 뒤 부싯돌로 꼬리에 불을 붙이는데, 이때 큰 굉음과 함께 불가사리가 까맣게 탄 밥풀의 모습으로 꺼지고 만다. 전설은 결코 요망한 괴담이 아니다.

생명그물 대표·환경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