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가 인재 첨단기술 자본 등 3박자의 조화로 창출된 세계 4차 산업혁명의 중심지라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 3박자 중에 으뜸은 당연히 인재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의 인재 영입 방식이 독특하다. 어떤 기업에서 탐나는 인재가 발견되면 사람만 영입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 회사를 통째로 사버린다. 페이스북이 직원 12명의 소기업인 인스타그램을 12억 달러에 인수한 게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인재 영입 방식을 ‘acqui-hire’라고 한다. 인수(acquisition)와 고용(hire)의 합성어로, 인재 확보만을 목적으로 한 기업 인수라는 뜻이다. 사람 투자에 인색한 우리나라에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세계 레이싱업계의 전설인 마세라티의 성공 비결 역시 남다른 사람 투자다. 페라리, 알파로메오와 함께 이탈리아 레이싱계를 삼분하고 있던 마세라티는 1950년대 들어 인재 영입에 나섰다. 경쟁사인 알파로메오에서 레이싱카 설계자 콜롬보를 데려오고, 판지오 곤잘레즈 마리몬 보네토 등 당대 최정상급 레이서들을 확보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레이싱카가 ‘마세라티 250F’. 마세라티는 이 차로 세계 최고 자동차경주대회인 F1 그랑프리에서 모두 8차례 우승했다. 마세라티 250F는 1950년대 생산된 차인데도 2009년 영국에서 역대 최고 레이싱카로 뽑히기도 했다.

인사가 만사임을 다시금 일깨우는 사례들이다. 기업이나 정치나 다를 바 없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인 만큼 인재 영입이나 육성은 농사 짓듯이 늘 꾸준히 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은 정반대다. 평소에는 인재를 잊고 살다가 선거철만 되면 영입한다고 난리법석이다. 4·15총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요즘에도 어김없이 그런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척수장애인 교수 최혜영(40) 씨, 시·청각장애인 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낸 직장인 원종건(26) 씨 등 ‘스토리 있는 청년’들을 영입했다. 이에 질세라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목발 짚고 1만여 ㎞를 걸어 남한에 온 탈북민 인권운동가 지성호(38) 씨, 극지탐험가 남영호(42) 씨 등의 영입으로 맞섰다.

“(민주당 영입 인사들은) 일회용 추잉껌, 유통기한은 단물이 다 빨릴 때까지”(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일회용품 인재 영입쇼를 그만하고 인재 양성을 준비하라”(바른미래당) 등등. 이벤트성 인재 영입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유권자처럼 선거철에만 우대받는 한국의 인재가 애처롭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