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제주에서 있었던 2박3일간 워크숍 출장 중에 자투리 시간을 이리저리 모아 성이시돌센터를 방문했다. 한라산 자락인 그곳에는 성당, 양로원, 피정센터 등 가톨릭 시설이 밀집했는데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이시돌목장으로 더 잘 알려졌다. 필자가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만은 아니고, 일에 쫓겨 마음의 여유를 찾기 힘든 현대인이 잠시나마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그곳만의 고즈넉한 분위기 때문이다. 이곳을 천천히 산책하는데 말들이 한가롭게 노니는 것을 보았다. 평소에는 사색하느라 눈에 잘 안 들어왔었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선명하게 필자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제주는 말과 흑돼지가 유명한 지역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오랜만에 보는 말에게 손짓으로 반가움을 표해봤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 성이시돌목장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니, 제주의 너른 초원을 마음껏 달리며 건강하게 성장한 말이 다른 지역에서 자란 말보다 월등했을 법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서울로 보내야 할까? 어느 나라든 수도 서울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이고,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삶을 향유하는 데 필요한 많은 것이 가장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서울로의 집중은 많은 측면에서 역기능도 많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공간이 부족하게 되고 모든 비용이 상승한다. 그중 주거지 마련 비용이 가장 대표적인 문제다. 환경오염은 또 어떤가. 경제활동 인구 중 상당수가 서울과 수도권 이외 지역에는 남을 생각을 하지 않으니 극심한 고령화로 유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수도권 지역의 경제가 파괴되기도 한다.

2003년께 정부는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공공기관 지역 이전이라는 혁신적 정책을 내놨고 이에 따라 주요 공공기관을 전국 각 지역으로 분산 배치하기 시작했다.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혁명적인 정책까지 내놨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라는 복병을 만나 결국은 세종특별자치시를 조성하는 것으로 축소돼 지금에 이른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은 서울로’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억제하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가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삶을 영위하든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아주 간단하고도 정의로운 이유에서 출발했음이 명확하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한지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엊그제 제자 한 명이 면담차 찾아왔다. 29년째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보니 학생 면담 시기에 따라 면담 내용의 대부분을 예측해서 맞추는 ‘신공’을 쌓게 되었는데, 이맘때 찾아오는 제자는 거의 100% 다른 대학 편입을 위해 자퇴하겠다는 내용을 들고 온다. 아니나 다를까. 부산 학생인 그는 서울에 있는 모 대학의 동일 계열 학과로 편입하게 되었단다. 편입을 만류하기 힘든 수준의 대학이었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것이니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하면서 서울 소재 대학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정 가고 싶으면 졸업하고 취업을 서울로 하는 것은 어떨까?”하고 진지하게 조언했다.

학생은 더욱 진지하게 “모름지기 사람은 서울에서 살아야 합니다”고 짧고 굵게 말했다. 자퇴를 허용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30년 가까이 살았고 부산에서도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 필자는 서울의 매력을 그다지 크게 느끼지 못한다. 부산에서 태어나 20년 남짓 살면서 여행 삼아 가서 본 서울의 화려함을 젊은이는 동경할 것이다. 제자들의 서울행을 저지할 일만도 아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부산 특유 애향심만으로는 지역을 못 지킨다. 지역인재 역외 유출을 막고 공공기관 지역 이전 등을 통한 지역 균형발전의 진정한 완성을 위해 대학부터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지역의 산·관·학·정계가 지혜를 모아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강력한 지역대학 경쟁력 강화 정책, 지역인재 우대 채용 정책을 내놓아 젊은 인재들 마음을 사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이 없어 폐교하는 시골 학교의 처지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에 닥치지 말란 법이 없을 테니 말이다.

부산가톨릭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