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를 주제로 열린 세계경제포럼은 큰 충격을 던졌다. 기술의 진보로 2020년까지 주요 15개국(전 세계 고용의 65% 차지)에서 새로운 일자리 206만1000개가 창출되는 반면 716만5000개의 기존 일자리는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당시 새 일자리에 대한 기대감보다 어떤 일자리가 줄어들지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대기업 종속적인 산업구조에 고용 유연성이 부족한 우리나라도 4차 산업혁명을 일자리 중심으로 대응했다. 정부도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전략을 고민 중이다.
돌이켜 보면 산업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새 기술이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기는 했지만, 인류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줄지는 않았다. 늘 시대에 필요한 기술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냈고, 그를 통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강의나 토론을 할 때면 부정적인 면보다는 기술의 진보가 만들어 낼 새로운 기회를 먼저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 확보에 매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특히 연구개발과 기술 확보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지역 주력산업의 미래상황을 예측해 현재의 역량에 기반한 발전 방향을 설정하고, 목표를 이루어 내기 위한 기술개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부산산업과학혁신원도 지난해부터 부산 자동차부품산업의 구조혁신 방안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론은 “부산의 자동차부품산업이 살아남으려면 전기차 시대에 적합한 부품 개발과 생산체계로 조속히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연기관 기반의 완성차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역 중소기업의 상황에 비춰 보면 산업구조를 전환할 계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곳에서는 언젠가 기회가 찾아오는 법. 이러한 고민을 한 번에 털어내 주는 기회가 부산에 찾아왔다. 지난 6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부산형 일자리 상생협약 체결식’이 그것이다. 부산형 일자리는 독일 프리미엄 완성차 기업에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파워 트레인을 납품하는 코렌스가 부산에 둥지를 틀게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코렌스는 중국·미국의 파격적인 유치 조건을 뒤로 하고 20여 개 협력사와 함께 부산에 신규 생산시설과 연구시설이 복합된 전기차 핵심부품 클러스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부산시도 행·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이해 당사자들의 협력을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당초 코렌스 이전 부지에 입주하기로 돼 있던 기업은 지역의 미래를 위해 부지를 내줬다. 지역의 연구·교육기관들은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협력체계를 만들고 우수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협력하기로 했다. 원청 기업은 기술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사에 기술이전은 물론 공동 연구개발함으로써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협력사 노동자에게도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 제공을 위해 정규직 채용과 임금 격차 완화 방안을 제시했다. 노동자는 직종배치 전환과 기술 교육을 수용하고 사업의 안정화 단계까지는 연구인력이 이직을 자제하기로 화답했다.
신종 코로나의 확산에도 상생협약 체결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형 일자리 상생협약 체결은 대한민국이 잘사는 시대, 혁신적 포용국가를 실현하는 이정표”라며 국가적 관심과 지원도 약속하였다. 이렇듯 부산형 일자리는 노·사·민·정이 함께 성장하기 위해 조금씩 양보하고 힘을 모아낸 결과물이다. 이렇게 모인 힘은 7600억 원의 투자와 4300여 명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직접적 성과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기술혁신이 새로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증명할 것이며 시민에게 미래에 대해 희망을 주어 활력 넘치는 도시로 변화시킬 수 있다. 부산형 일자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서로 협력해 기술혁신을 이루면 제2, 제3의 부산형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부산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부산, 달리자!
부산산업과학혁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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