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은 표지사진에 “코로나바이러스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써넣었다. 프랑스의 ‘르 쿠리에 피카르’는 마스크를 쓴 여자 사진 옆에 “황색 경계령”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덴마크의 ‘율란츠-포스텐’은 중국 국기 오성홍기의 별 문양을 코로나바이러스 입자로 바꾼 만평을 실었다. 호주의 ‘헤럴드 선’은 빨간색 마스크 이미지 위에 “차이나 바이러스 대재앙”이라는 문구를 달았다. 유럽에서 중국과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발언이 공공연하게 자행됐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일간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공식 명칭이 있는데도 과학적으로도 맞지 않는 ‘우한폐렴’이라는 말을 고수함으로써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이런 식의 발화는 삽시간에 퍼져나가 중국인과 우한이라는 말 자체가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됐다.
한편 한 여자대학교의 구성원 일부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반대했다. 남성 대 여성이라는 이분법의 프레임 안에 트랜스젠더 학생을 놓음으로써 남성 중심 사회에서 차별받는 약자로 정립한 자신들의 정체성 자체에 균열을 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으로서 혐오를 반대하고 거부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역설적이게도 소수자 혐오를 통해 부정했다. 트랜스젠더 개인을 ‘바이러스’로 취급한 것이다.
혐오에는 차별과 배제가 따라붙는다. 정상인 나(유럽, 한국, 숙명여대)는 ‘혐오’를 통해 비정상인 너(아시아인, 중국인, 트랜스젠더)를 차별,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발화된 혐오발언은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바이러스처럼 기생하고 번성한다. 어제의 혐오 발화자가 오늘의 혐오 대상자가 되고, 오늘의 혐오 대상자가 내일의 혐오 발화자가 된다. 그리고 이 병(바이러스)을 치유할 수 있는 백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로지 각자가 면역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이미 페미니즘이 밝힌 바대로 이 혐오라는 바이러스는 가부장제적 남성 중심 사회, 착취에 기반한 자본주의체제가 끊임없이 생성시키고 확산시키고 있다. 개인에게 “혐오하지 말라”는 명령, 강제, 권유, 충고, 조언, 요구, 요청은 부분적, 일시적 공감을 얻을지 모르나 결국 실패한다. 왜냐하면 체제 자체가 인종적, 민족적, 국가적, 지역적, 젠더적 혐오에 바탕을 둔 소외와 배제의 경쟁체제이기 때문이고, 공포와 불안을 조장함으로써 상품을 만들고 이윤을 발생시키는 착취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반대한 대학생들에게 공감하지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것 같다. 그들은 20년 동안 남성 중심 사회의 차별받는 여자로서 지옥 같은 입시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다.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 혹은 적으로 상정된 타자와 경쟁해서 겨우 보금자리에 입성한 자들이다. 그들에게 이질적 존재, 바이러스 같은 존재를 받아들이라는 요구는 그들이 지난 20년간 겪었던 배제와 경쟁의 역사(삶) 자체를 부정하라는 요구가 아닌가. 그들은 입으로는 해방을 위한 페미니즘을 주장하지만 몸과 정신은 여전히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살아남아야 하는 강박에 사로잡힌 존재가 아닌가.
혐오는 비단 숙대만의,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촉발된 인종혐오는 한국 사회가 그토록 선망했던 유럽이 얼마나 나약한 기반 위에, 이중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시스템 위에 서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민족과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작동하는 혐오바이러스의 온상인 자본주의체제에 유럽이 가장 깊숙이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외려 우리는 열대 우림에서 살고 있는 원시부족 사이에 혐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도하면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가 얼마나 기만적이고 허구적으로 그어졌는지 깨닫곤 한다.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묻고 있다. 너희 인류가 정말 정답이냐고. 너희 문명은 ‘바이러스’를 대하듯이 인간을 대하지 않았냐고. 너희 자신이 절망의 징표가 아니냐고. 절망을 회피하고 유예한 채 혐오바이러스를 통해 끝없이 다른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작가·헤세이티 대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