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발한 꽃의 향기 가득한 5월의 봄 끝자락에서 신록이 선명해지는 6월의 초입으로 넘어가면서, 문득 어릴 적 봄 소풍이라는 아주 중요한 학교의 야외활동이 있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나의 학창 시절이 시작되고 첫 봄 소풍은 부산 금강공원이었다.

당시 살던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가족과 자주 가던 곳이라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공원으로 가는 소풍이었지만, 소풍 가는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설레고 설레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몇 걸음 걷지 않아도 공원 입구까지 다다르지만, 그때 어린아이의 걸음으로는 오르막길이 힘겨웠다. 그럼에도 얼마나 재밌고 즐거웠던지…. 소풍 가던 날은 하루 내내 놀았다는 기억뿐이다. 그날은 숙제가 없었다. 저녁 어스름이 올 때까지 놀았던 것 같다. 날마다 소풍 가는 날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노는 건 참 즐겁고 행복했다.

전염병이 끝나지 않아 전 국민이 아직도 조마조마한 시기를 견뎌내고 있는 요즘, 경제를 걱정하는 여러 사정과 지표가 넘쳐나지만, 경제생산 활동 주체로서 인간이 아닌 ‘놀이’ 자체를 영위하는 주체로서 놀이하는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마도 작금의 여러 위기도 놀이하는 창조적 인간들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 믿음이 있으니까.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네덜란드 태생의 역사학자 요한 하우징어(Johan Huizinga 1872~1945)가 1938년 출간한 문화사회학 저서이다. 모든 인류의 생활양식, 즉 정치 경제 과학 철학 법률 전쟁 종교 예술 등등은 놀이로 시작되어 놀이의 특성을 내재하여 문화로 완성되어 왔다는 주장이다.

인상적인 내용 가운데 하나는 혼자서 하는 놀이는 문화적 생산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의 서술, 신들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도록 태어난 인간을 불쌍히 여겨 인간들이 고통으로부터 잠시 쉴 수 있도록 추수감사축제를 열게 하여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를 보내 인간들의 친구가 되게 했다는 내용이다. 질서 있고 조화로운 선율의 현악기 리라를 연주하는 아폴로와 황홀한 무아지경의 세계로 몰아가는 디오니소스의 타악기 팀파논으로 축제의 장은 모두가 함께 즐거운 놀이의 시공간이었을 것이다.

고대에도 인간의 생은 고통이었나 보다. 거대한 축제를 함께 즐기며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을 허락받은 인간들은 함께 놀며 문화적 생산을 확대시켜오면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문화를 확장해 온 것이다. 함께 노는 것이 문화이자 역사이고 예술이다.

역병은 지난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 사회에 자주 나타나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 삶 자체가 고(苦)라는데 역병까지 더해지니 참으로 재미없는 세상이다. 주말의 소소한 즐거움이던 영화마저도 전년 대비 같은 기간에 90% 정도 관람객이 감소하였다고 한다. 보편적인 문화예술 활동 중에서 부동의 위치에 있던 영화 관람은 방역시스템이 생활 속 거리두기로 완화되었어도 아직은 예전처럼 즐겁게 마음 편히 누구나 즐기러 가지는 못하는가 보다.

그럼에도 잘 노는 인간들이 있다. 혼자서도 잘 놀지만 모여서는 더욱 잘 놀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노는 방법을 만들어 내고 놀 줄 아는 사람들,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예술 하는 사람들이다. 코로나가 길어지고 경제가 위기로 다가오는 시간을 온몸으로 매섭게 느끼고 있을 몇몇 예술 하는 지인들의 안부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할게…. 그래, 징한 놈의 세상. 하룻밤 신명 나게 놀다 가면 그뿐….”

영롱하고 천진무구한 시를 남겨준 시인에게,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를 만들어준 영화인에게, 놀이하는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가는 최전방에 서 있는 예술인들에게 우리는 모두 빚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예술인 고용보험법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부산문화재단에서 부산 예술인에게 긴급생계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왜 아직도 마음이 무거운가. 뭔가 부족한 이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매일매일 소풍이었으면 하는 마음, 신나게 놀고 싶은 마음이 문화를 만들고, 역병 후에는 더욱 즐겁게 놀이를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들을, 그리고 나에게 응원한다.

올아트 22C 문화기획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