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경기에서 정치적 표현 금지와 관련된 대표적 ‘골 세리머니’는 1997년 3월의 파울러 사건이다. 당시 영국의 축구스타로 리버풀 소속이던 로비 파울러는 노르웨이와의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골을 터뜨린 뒤 자신의 유니폼 속에 정치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내보였다. 리버풀 부두노동자들의 집단 해고에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이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파울러에 벌금이 부과됐고, ‘축구 외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선수들은 경기를 할 수 없다’는 조처도 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1999년 유고 연방에 대한 나토(NATO)의 공습을 두고 유고 선수들이 정치적 항의 의사를 잇따라 표시한 게 단적인 사례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한국 축구대표팀 박종우가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명 ‘독도 세리머니’로 주목받았다.

요즈음은 ‘무릎꿇기 세리머니’가 화제다. 지난 1일 독일 분데스리가의 정규 경기에 등장한 데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여러 팀 훈련장에서는 단체로 벌어졌다. 우리 K리그에서도 ‘살아있는 전설’ 이동국(41·전북)이 지난 6일 경기에서 국내 처음으로 이 세리머니를 펼쳐 관심을 끌었다. 이 동작에는 지난달 미국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뜻이 담겼다.

이 세리머니는 미국미식축구리그(NFL) 선수인 콜린 캐퍼닉에서 비롯됐다. 그가 2016년 8월 경기 전에 국민의례를 거부하고 인종·소수민족 차별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자신의 한쪽 무릎을 꿇은 게 시초다. 이는 스포츠뿐 아니라 각계로 번졌다. 폴로이드 사망사건 후 미국 안팎으로 확산된 항의 시위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특히 지난 5일 캐나다 트뤼도 총리가 자국 시위대 앞에서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고 적힌 티셔츠를 든 채 무릎꿇기에 동참한 모습도 포착됐다.

선수들의 이 세리머니에 힘을 더 실은 것은 독일축구협회(DFB)의 입장 표명이다. 경기장에서의 정치적 표현이라 징계 여하에 관심이 쏠렸는데, DFB는 이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나섰다. 향후 경기에서도 인종차별 반대 세리머니는 징계하지 않을 거라는 방침까지 밝혔다. 게다가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이 세리머니에 대해 처벌이 아니라 박수를 보내야 한다며 지지의 뜻을 나타냈다. 이런 상황이니 무릎꿇기 세리머니는 이제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만국 공통이 될 듯하다. 그렇더라도, 이 세리머니가 굳이 필요하지 않는 세상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