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간의 ‘집안 생활’을 끝내고 전면적인 개학이 시작된 지 일주일 남짓이다. 우리 집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교복으로 동복을 맞추고선 입어 보지도 못하고 하복으로 등교를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할 수 있는 하루가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출근하는 내 눈을 피해 매일 몰래 하던 컴퓨터 게임이 그리운 눈치다.

본래 주말에만 게임을 하기로 약속했었지만, 등교가 자꾸만 미뤄지자 그 약속도 흐지부지됐다. 평일인데 퇴근이 30분 정도 빠른 날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니 사람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있다. 얄미운 마음이 들어 짐짓 더 무서운 얼굴로 아이를 불렀다. 그 혼비백산한 얼굴이라니. 녀석은 채팅을 하던 친구들에게 “아, 나 엄크. 지금 나가야 돼!”라는 절규를 남기고 게임 접속을 끊었다.

‘엄크’는 대체 무슨 말인지 궁금했다. “엄크가 무슨 뜻이야? 엄마가 와서 위험해졌다 혹은 치명적인 위험이다 이런 거라서 엄마 크리티컬이야?” 묻자 아이는 해맑은 얼굴로 “‘엄마 헐크’. 집집마다 엄마들이 제일 무섭잖아”라고 선선히 가르쳐 준다. ‘엄마 헐크’ 라니. 둘러댈 줄 모르고 솔직히 말해주는 아이가 귀여우면서도 한심했다. 집집마다 엄마가 헐크면 니네는 진즉에 다 우주먼지다 이놈들아.

한편으로 내가 그렇게 무서웠나 싶다가 최근의 창녕 아동학대 사건이 떠올랐다. 몸과 마음 모두 온전히 보호받아야 하는 가정이 가장 무서운 곳으로 변해버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된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 아이는 이런 농담을 할 수도 없었겠지. 너무 배가 고프고 몸도 아파 더 이상은 그곳에서 살 수 없어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던 아이.

그 아이에게는 누가 헐크처럼 보였을까. 학생일 때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 말에는 힘이 있다는 국어 선생님의 말씀에 ‘뭐 그렇게까지야’라며 가볍게 듣고 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집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쓰는 농담이나 신조어도 흘려 듣기 어렵다.

고작 컴퓨터 게임을 못 하게 하는 엄마가 무서워 헐크라며 장난치는, 아이와 친구 말 속 엄마는 귀찮고 시끄러워서 잠깐 피하고 싶은 엄마다. 창녕의 그 아이에게 엄마는 어떤 의미였을까. 엄마라는 말 속에 있는 다정함과 포근함, 믿음직함을 그 아이에게 줄 수 있을 엄마를 그 아이는 되찾을 수 있을까.

독자여론팀장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