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태종대공원 입구에는 UN 의료지원단 참전 기념비가 있다. 벌써 4반세기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부산 사람이 의외로 많아 아쉽다.

잘 아는 것처럼 6·25 전쟁 때 UN의 깃발 아래 16개국이 적과 싸울 전투병을 보내왔다. 이른바 ‘UN 16개국’이다. 하지만 더하여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인도가 사람을 살릴 목적으로 ‘의료지원단’을 보내왔다. 의료 지원 5개국이다. 이들은 야전병원, 이동 외과병원, 병원선으로 이 땅과 바다에서 부상자들을 돌보았다.

인도군 소속 제60 야전병원은 1950년 11월 20일 부산항에 발을 디뎠다. 인도 의료진은 UN군의 공수 작전에 동참하며 평양 가평 문산 등지에서 활약했다. 대구에 주둔하며 우리나라 마취의학의 산파역을 맡았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음에도 이탈리아도 제68 적십자야전병원을 이 땅에 보냈다. 그들은 서울 우신초등학교에 병원을 세우고 주로 민간인을 치료했다.

당시 UN 사무총장 트리그베 리를 배출한 노르웨이는 60병상 규모 이동 외과병원(MASH)을 전선에 보냈다. 노르매쉬(NORMASH)로 불렸던 이 병원은 1951년 7월부터 미 8군 직할 부대로 편성돼 최전방인 동두천에서 9만 명 이상을 진료했다. 그 자리에는 기념관이 남아있다.

덴마크는 병원선 유클란디아호(Jutlandia)를 보냈다. 1951년 3월 부산항에 입항해 진료를 시작한 유틀란디아호는 유엔 장병에게 선호도 1위의 병원이었다. 특히 코펜하겐 의대에서 온 신경외과 전문의 부쉬 교수가 있어 어려운 뇌수술을 도맡았다. 부쉬 교수는 부산 시내 국군병원으로 가서 뇌수술을 집도하기도 했는데, 이때 조수를 맡았던 젊은 의사는 나중에 우리나라 신경외과의 개척자가 된다. 유틀란디아호는 전황에 따라 원산이나 인천항에 정박하기도 했다.

다섯 번째 나라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부산과 인연이 각별하다. 스웨덴은 가장 먼저 와서 제일 늦게 이 땅에서 철수했다. 1950년 9월 부산 서면 부산상고에 스웨덴적십자야전병원(SRCFH)을 개원해 부상병을 진료했고, 정전 후에는 부산스웨덴병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민간인을 본격적으로 진료했다. 1955년 5월에는 국립부산수산대학교(현재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로 이전했고, 1957년 4월 문을 닫았다. 6년 6개월 동안 부산에서 활약해 무려 200만 명의 환자를 돌보았다. 적십자정신에 맞게 UN군 장병은 물론이고 공산군 포로도 치료했다. 아울러 전쟁 난민과 부산 시민도 무상으로 진료했다. 사정이 어려운 부산 지역 민간 병원에 의료진을 보내 진료를 지원했고, 망국병이라 할 결핵의 예방과 치료에도 열의를 보였다. 병원에 결핵 전용 병동을 열었고, 동래 지역의 보육원 등에서 결핵 검사와 BCG 접종사업을 펼쳤다.

정전이 되고 UN 참전국이 속속 이 땅에서 철수를 시작했지만, 스칸디나비아 3개국은 남았다. 폐허가 된 국내 의료 시설을 재건하기 위해 세 나라는 힘을 모아 서울시립병원 터에 450병상 크기의 국립의료원(현 국립중앙의료원)을 세웠다.

1958년 개원한 국립의료원(NMC)은 스칸디나비아병원으로도 불리며 우리 국민의 큰 사랑을 받았다. 최고의 시설에서 스칸디나비아 의료진이 선진 의료기술을 이용해 환자를 돌보았다. 개원 후 10년 동안은 스칸디나비아 3개국 정부가 운영비도 대주었고, 1968년 우리 정부에 이양되어 현재는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우리 공공 의료의 중심이 되어 코로나19와 맞서 싸우고 있다.

벌써 전쟁 70주년을 맞는 유월이다. 새로 지어질 북항의 어느 한 지점을 찾아 북유럽 바이킹과 부산의 인연을 기념하는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 그전에 많은 시민이 태종대의 UN의료지원단 기념비에도 관심을 가지면 더 좋겠다. 전쟁 70주년을 기억하는 유월이 가기 전에 말이다.

신경과전문의·메디컬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