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는 “로마로 가는 길”이었다. 서기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서로마제국의 영토를 게르만족이 지배한 이후 유럽인의 꿈과 이상은 로마제국의 부활이었다.
서기 800년 프랑크왕국의 샤를마뉴대제가 서로마황제의 제관을 로마교황으로부터 받은 이후 서로마제국의 뒤를 잇지만, 이 제국은 샤를마뉴대제 사후 세 아들에게 분할되고 이 분할된 땅이 오늘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기원이 된다. 서기 962년 독일의 오토대제가 로마교황으로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제관을 받고 로마제국 계승자로서 공인됐으나, 신성로마제국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고 후세 역사가들의 혹평을 받는 제국이었다. 이 형식적인 로마제국은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로마제국 부활의 꿈을 거의 이룰뻔한 인물은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아들을 로마 왕에 책봉하였고 제국의 수도를 로마로 하겠다는 계획을 가졌다는 것을 보아도 로마제국 부활이 필생의 이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영국과의 워털루전투에서 패배하여 제국 부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의 제3제국은 유럽을 거의 장악했으나 히틀러의 제국은 로마제국과 관련이 없다. 히틀러는 로마제국 본거지인 서유럽에 관심이 없었으며 러시아 땅을 정복하겠다는 욕심뿐이었다. 이 제국은 로마제국 같은 관용의 제국이 아니었다. 제3제국은 선동에만 능한 수준 미달의 지도자에 의한 잔인한 정복국가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유럽에 미군이 진주하게 되었다. 1949년 미국과 서유럽 12개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결성했고, 미군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 주둔한다. 이것을 미국이 제국의 길로 나아간 시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제국이 아니고는 정복지가 아닌 독립국에 군대를 주둔하는 예가 없다. 미군의 유럽 주둔은 소련의 침공에 대비한 서유럽국가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을 “초대받은 제국”이라 부른다.
미국 건국자들의 목표는 미국을 새로운 로마공화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미국의 상징은 로마와 같은 독수리이고 미국 상원을 로마원로원과 같이 ‘Senate’라고 부른다. 대영제국은 자신의 동족이 세운 미국에 제국의 지위를 평화롭게 양도했다. 이 당시 후일 영국의 수상이 된 맥밀란은 “미국은 새로운 로마제국이다. 유럽은 그리스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세기 유럽은 전쟁의 대륙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망자가 5000만 명에 이르렀고 제1차 세계대전 때는 2000만 명이 넘었다. 찬란했던 유럽의 문명이 폐허가 됐고 미군의 후견으로 안보를 유지하게 된 비참한 유럽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난 것이 1957년의 유럽경제공동체(EEC)였다. EEC는 1991년 유럽공동체(EC)로 발전했고 독일 통일 뒤 유럽연방을 목표로 한 유럽연합(EU)을 성립시켰으며 현재 유럽 28개국이 가입해 있다.
EU는 만만한 지역이 아니다. 인구는 5억 명이 넘고 GDP는 미국을 능가해 세계 제1위이다. EU가 연방국으로 발전하면 새로운 로마공화국이 유럽에서 부활하고 최고의 인적 자원, 학문과 문화, 과학기술을 가진 초강대국이 된다. 하지만 EU의 미래는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 이후 불확실하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견제이다. 로마의 후계자임을 자부하는 미국이 새로운 로마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미국과 모든 면에서 일심동체인 영국이 EU를 탈퇴한 이유가 통합된 유럽을 경계하는 영국의 역사적 전통과 미국의 견제 때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북부유럽과 남부유럽의 경제적 격차 때문에 북부 유럽인은 복지에 매몰된 남부 유럽인을 먹여 살릴 이유가 없다고 본다. 또한 주도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경쟁심은 해소될 방법이 없고, 모든 정책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EU가 연방국이 되지 못하고 느슨한 연합으로 남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EU의 역할은 중요하다. 유럽이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을지, 경제적 실리 때문에 중국의 일대일로에 동참할지에 따라 세계사의 흐름은 달라질 것이다. 아직 학문과 과학의 원천은 유럽에 있고 심지어 공산주의의 원천도 유럽이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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