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전문가들이 모여 화석연료를 전혀 안 쓰고 대양 항해가 가능한 ‘최초’ 요트를 개발해 세계 일주 항해를 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베네치아 런던 등 세계인의 이목이 쏠릴 만한 항구만 골라 기항해 친환경 선박 기술을 홍보하며 관심 몰이를 하는 중이다. 7년 동안 50개국 101개 항구를 방문할 예정이다. 풍력에너지, 태양광에너지, 수소연료전지 등 말 그대로 ‘화석연료만 제외하고’ 인류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종류 에너지를 쓰는 요트를 만들어서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횡단하는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환경문제에 대한 대안 제시와 다양한 재생에너지 활용 기술 확대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선박에 쓰이는 수소연료전지 활용 기술 확보와 검증이 목적이다. 풍력과 태양광에너지 등으로 바닷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고, 생산된 수소는 탑재된 수소연료전지에 이용되고, 이렇게 수소연료전지를 통해 만들어진 전력을 기본 동력으로 삼아 화석연료 없이도 대양 항해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려 한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 이름이 ‘에너지 옵저버(Energy observer)’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후원자가 세계 최대 수소자동차 생산 기업인 토요타자동차라는 점이 재미있다. 프랑스 기술진이 주도했지만, 건조 자금 등 전체 비용을 지원한 곳이 일본이라는 것이 놀랍다. 국제적 이목 끌기와 홍보가 더 수월하도록 프랑스 기술진을 포함한 다국적팀을 투입한 전략과 도쿄올림픽 개최 날짜에 맞춰 도쿄에 기항하는 것으로 예정했다는 것까지 알고 나면 더 놀랍다. 올림픽 연기 결정 후, 에너지옵저버호의 도쿄 기항일이 1년 후로 바뀐 것을 보면 그 저의를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이는 도쿄올림픽에 쓰이는 에너지를 전부 친환경 수소에너지로 공급하겠다던 운영 전략과 치밀하게 맞닿아 있다. 올림픽에서 수소 시대 개막을 선포하고 기술을 홍보하려던 것이 숨은 전략이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올림픽 연기가 없었다면, 적어도 선박기술 관련해서는, 세계 ‘최초로’ 화석연료를 전혀 쓰지 않고도 대양 항해가 가능하다는 일본산 기술 홍보가 세계에 멋지게 먹힐 뻔했다. 기술 홍보에 이어지는 세계 시장 선점. 100억 원 남짓한 예산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큰 투자효과다.

우리는 많은 최초 사례를 안다.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어 유명해졌고 그 기계는 오늘날 비행기로 불린다. 닐 암스트롱은 달에 착륙한 최초의 인류가 됐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우주라는 공간에 대해 접근 가능한 공간으로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주에 갈 수 있게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우주항공산업이 얼마나 성장해왔는지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렇듯 최초라는 단어는 상징성과 함께 유무형 파급효과를 갖는다.

얼마 전, 한국 조선업계가 23조 원에 이르는 LNG 운반선을 수주한 것을 축하하는 소식이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우리나라 조선 업체들은 LNG 운반선을 건조하면 대략 선가의 5%에 해당하는 기술료를 프랑스의 특정 기업에 지불한다. 그래서 프랑스에 지급해야 하는 기술료 규모만 1조 원이라는, 낭보 이면에 숨은 아주 슬픈 기사도 있었다.

1조 원의 기술료 수익을 확보한 그 프랑스 기업은 보온병에 쓰이던 단열재를 영하 163도의 LNG를 저장하는 선박용 화물창에 적용하는 특허를 보유한 회사다. 당연히 세계 최초이다. 세계 최초의 특허를 기반으로 산업 분야로 확대를 시도한 그 기업의 노력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고 경제 논리에 따른 보상도 있어야 한다.

원천특허를 갖지 못했기에 기술료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특허를 사용해주고, 현장에서 생기는 기술적 문제는 사용자가 직접 해결해주고, 그 과정에서 개선되는 내용까지 특허권자가 다시 가져가는 악순환 구조가 우리나라 조선산업체가 좀체 벗어나기 힘든 함정으로 작용한다. 최초가 되지 못했기에 겪는 일이다.

기술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독자 기술이란, 최초 개발 또는 점유를 통해서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최초 개발이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크다면 시도 자체부터 꺼려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희생과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누군가는 최초의 길을 개척해 달라는 의미로 ‘퍼스트 펭귄’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수소 시대를 대비하고자, 선박 분야 최초 사례가 되기 위한 경쟁이 세계에서 치열하게 벌어진다. 유럽에서는 수소연료전지 추진 호화 크루즈 건조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일본은 ‘그들 말에 따르면’ 액체수소운반선 건조를 마쳤다고 한다. 이런 ‘최초’ 시도가 연착륙할지 궁금하다.

에너지 옵저버호가 ‘퍼스트 펭귄’이 될지 요란한 홍보로 그칠지는 1년 뒤에야 알게 되겠지만, 세계가 아우성치는 이 시장에서 낳든 키우든 우리나라에도 펭귄 한 마리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