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원자력발전소(원전) 1호기에 대한 해체계획서 초안이 나왔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국내 최초로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고리 1호기가 2017년 6월 영구정지 조치된 이래 3년 만의 일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에 인접한 부산 울산 경남의 9개 기초자치단체 모두에게 계획서 초안을 최근 전달한 사실과 함께 내달부터 공람을 통한 의견수렴에 이은 9월 공청회 등의 일정을 그제 밝혔다. 해체를 향한 장정의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으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물론 초안이라, 해당 지자체·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보완과정이 제대로 이뤄져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야 올 10월 말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최종안을 제출하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터다. 그간 해체와 관련된 의견수렴이나 공청회를 주관하는 지자체 문제를 두고 반발과 갈등이 빚어졌는데, 관계법 시행령 개정으로 해결됐다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고리원전 인근 9개 지자체 모두의 주민 의견을 종합 수렴하는 게 가능해진 것으로, 그 취지와 목적을 잘 살려야 하겠다.

하지만 관건은 역시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다. 현재 고리 1호기에는 485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남아 있는데, 이를 어디에 어떻게 보관·처리한다는 방안이 해체 계획서에는 빠져있는 것이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고서는 의견수렴이 퇴색되고 해체일정도 늦어질 우려가 높다. 고리 3, 4호기에도 그 포화율이 각각 97.2%, 98.0%에 달하는 상황이다. 한수원은 2024년 말까지 고리원전 부지에 임시저장시설을 만든 뒤 이듬해 사용후핵연료를 옮길 계획이지만, 불투명한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가 전국 각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작년 5월 출범시킨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최근 위원장 사퇴 등으로 파행에 빠져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구로 둔 것과 그 구성 등을 놓고 탈핵시민사회에서 반발하는 요인이 크다. 이렇다 보니, 포화 직전인 월성원전의 임시저장시설 증설 여부를 비롯해 사용후핵연료의 중장기 관리방안 공론화가 난항을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근본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