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게 되는 수순. 피할 수 없다. 그걸 모르는 이도 없다. 다만 좀 더 오래 살길 바란다. 병들지 않은 채.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 외쳐봤을 구호가 ‘9988 234’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 3일쯤 아픈 다음 죽고 싶단 뜻이다. 더 야무진 구호도 있다. ‘9988 231’이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 3일만 아픈 후 다시 벌떡 일어나고 싶다는 염원이다. 무병장수를 누가 마다할까.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오래 살수록 병에 더 시달려야 한다. 어떤 이는 말한다. “재수 없으면 100세까지 살 수 있다.” 유병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란 얘기다.
인간이 겪는 질병은 3만 개가 넘는단다. 이 중에 암, 심혈관질환, 폐렴은 우리 한국인의 생명을 빼앗는 3대 질병이다. 암에 따른 사망률이 가장 높다. 의학이 발달했다지만 암 선고는 아직 사망 선고로 여겨진다. 그런데 암보다 더 슬픈 병이 있다. 치매다. 치매는 기억을 지우는 병이다. 치매는 내가 나를 모르게 만든다. 평생의 배우자도, 내 목숨보다 귀한 내 자식도 낯선 이로 만든다. 한 톨의 추억조차 허용치 않는다. 그래서 치매는 가장 몹쓸 병이다.
엊그제 선배 교수의 전화에 콧등이 시큰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선배는 퇴임 후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퇴행성 뇌 질환으로 치매 전조증상이다. 그는 2년 전쯤 기억이 흐릿해졌단다. 요즘엔 시공간 개념마저 헷갈린단다. 그래서 정신이 맑은 날 몇몇 지인에게 전화를 건단다. 수재 소리를 들으며 뭇사람들의 기대와 선망의 대상이던 선배. 국내외 저명한 물리학자인 그가 어쩌다 이리됐는지. 곧 거동조차 힘들 거란다. 남 얘기하듯 웃으며 툭 던진 선배의 말에 다시금 울컥 목이 멨다. 측은지심도 들고 내 얘기일 수도 있어서다.
최근 중앙치매센터는 65세 이상 75만 명이 치매 환자라 밝혔다. 노인 10명 중 1명꼴이다. 이 수치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24년엔 100만 명, 2039년엔 200만 명을 넘길 거란다. 더욱이 요즘 40, 50대의 초로기 치매가 급증하는 것도 큰 문제다.
치매는 왜 생기는 걸까. 아일랜드 공립의대는 9만6000명의 환자를 연구해 고혈압을 치매의 위험인자라 밝혔다. 캐나다 보건당국의 발표는 우리를 더 바짝 긴장케 했다. 12년간 무려 650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도로에서 50ｍ 이내에 살면 300ｍ 넘게 떨어져 사는 이보다 치매 발병률이 7%나 더 높았다. 차량 배기가스가 뇌를 손상해 치매가 된다는 뜻이다. 가족력과 식습관도 치매의 원인이다. 그러나 스트레스와 부정적 사고를 치매의 가장 심각한 원인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코르티솔 분비가 인지기능을 떨어뜨려서다. 역시 스트레스는 만병의 주범이다.
그렇다면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할 방법은 뭘까. 국제알츠하이머협회는 5대 수칙을 제시했다. 심장 돌보기, 운동하기, 잘 먹기, 두뇌 자극하기, 사회활동 즐기기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숙면도 넣길 권한다. 수칙 중에 가장 좋은 방법이 운동이란다. 당연하다. 운동은 다른 수칙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운동하면 심혈관과 뇌 기능이 강화된다. 또 운동은 그 자체가 즐거운 사회활동이다. 식욕도 개선된다. 물론 불포화지방산과 채소가 풍부한 지중해식을 먹는 게 좋지만. 운동이 숙면에 이로운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운동할까. 매일 30분 이상 유산소운동을 하는 게 좋다. 빠르게 걷기, 수영, 구기 등을 하자. 다만, 맑은 공기 가득한 숲이나 공원에서 운동하자. 도심을 벗어나 살긴 어려워도 도심을 벗어나 운동할 순 있잖은가. 스트레스 등이 치매를 일으킨다니 운동하며 떨쳐내자. 운동하면 치매의 예방과 치료에 좋은 행복 호르몬들이 생긴다. 매일매일 즐겁게 운동하자. 9988의 그 염원도 술자리가 아니라 운동으로 이뤄지거늘.
손준구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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