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과제를 읽고, 기말고사를 채점하고, 성적을 산출하여 제출했으며 수업결손에 따른 보강까지 다 했으니 행정상으로는 이번 학기도 별 탈 없이 마무리한 셈이다. 그러나 이번 학기는 지금까지 내가 맡았던 지난 열네 번의 학기와는 전혀 달랐다. 한 학기 내내 학생들과 실제로 대면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행정업무 처리를 위해, 또는 개인 용무로 학교를 몇 번 방문했지만 강의실에서 학생과 함께 수업을 하거나, 그들과 한자리에 앉아 식사하거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모든 수업은 비대면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됐고 시험조차 온라인으로 치렀다. 처음엔 생경하고 힘들던 화상강의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벽을 향해 외치는 것 같던 낯선 수업방식에 점차 적응하자 카메라로 학생들 표정과 반응을 살피며 강의 속도나 내용의 깊이를 조절하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판서 대신 채팅창을 쓰는 것도, 강의가 끝나면 내 방에서 바로 쉬거나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왕복 세 시간 걸리는 학교에 매주 두 번씩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특히 매력적이었다. 낯설던 상황이 점차 일상이 되어가는 “뉴노멀”이 내 삶에도 서서히 자리 잡게 됐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고 다음 학기에도 비대면 화상 강의를 해야 된다면 나는 첨단기술이 주는 편리함에 마냥 즐거워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으로 마주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현실은 적응의 문제를 넘어서는, 제대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응어리를 남기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가 끝나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예견이 점차 현실화된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높아지고 사회 구성원의 피로도가 높아지자 각 분야 전문가는 다양한 진단과 해법을 제시한다. 경제학자는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성장 지향적 자본주의에서 탈피해 경제적 대안을 모색할 때라 한다. 과학자들도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에 따른 지구온난화가 새로운 병원체와 인간의 접촉을 더 빈번하게 하니 지금 같은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감염질환 대유행이 지속될 것이라 경고한다.

첨단기술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촉발된 새로운 “원격” “비대면”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 적응하는 것만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등장할 “언택트” 문화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모두 귀 기울여 듣고 실천해야 할 소중한 충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우리가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그리고 영구히 바꿀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아 온갖 것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도덕경’에 나오는 이 문장의 취지는 성인(聖人)의 속성을 설명하는 데 있지만 “하늘과 땅이 어질지 않다”는 구절은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작은 실마리를 준다. 흔히들 인간이 자연을 정복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일부고 자연의 운행과 밀접하게 결부돼 있다. 자연은 본질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기에 자연의 힘은 때로 인간에게 유리하게, 때로 불리하게 작용한다.

“인드라의 그물”[因陀羅網]처럼 촘촘한 자연의 네트워크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 마치 수학의 행렬처럼, 구성하는 원소 중 하나의 값이 바뀌면 나머지 모든 원소의 값이 변화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변화는 우리에게 유익할 수도, 해로울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천지가 어질지 않은 것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괄호 안의 모든 원소 값이 어떻게든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에 상수(常數)는 없다.

인과망(因果網) 속 천변만화하는 사태 중 하나가 코로나19 대유행이다. 자연의 일은 본질적으로 선과 악으로 재단할 수 없고 바이러스도 선이나 악으로 시비를 가릴 수 있는 대상은 아니지만, 이번 바이러스는 참 고약하다. 그 치사한 증식 방법도 그렇지만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엉클어놓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내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는 나를 돌보아줄 소중한 가족과 헌신적인 의료진을 공격한다. 누군가를 환대하기 전에 그 사람 체온부터 재게 만들고 삶의 활력이 되는 소소한 담소조차 부담스럽게 한다. 나와 무관한 타인의 삶을 감시하고 비난하게 한다. 저녁나절 사람들이 누군가와 만나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든, 모여 절실한 기도를 하든, 그들은 그들 삶을, 나는 내 삶을 각자 방식대로 영위할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자연의 몰가치한 무심함에 슬며시 인간적으로 서운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유성환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의교수·이집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