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는 생김새나 모양을 알 수 없다. 형태로는 그 실체조차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무형문화재 기능과 예능을 지닌 사람을 지정해 보호하는 이유다. 이는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다. 사람들은 이들을 ‘인간문화재’로 부르며 예우하고 있다. 유형문화재와 함께 대를 이어 보전하고 시대 흐름에 걸맞은 창조를 거듭해야 할 인류의 주요 자산이니까.

무형문화재 지정은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1961년 12월 정부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만든 ‘조선고적천연기념물보호령’을 폐지하고, ‘문화재보호법’을 새로 제정했다. 이듬해 1월부터 시행된 이 법을 바탕으로 한국문화 자산은 풍요로워졌다. 일선 지자체도 조례를 제정해 ‘중요무형문화재 기능과 예능 보유자’를 찾아 나섰다. 인간문화재는 정부나 해당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등 권리가 있지만, 응당 지켜야 할 의무도 있다. 전통문화를 재연해 보여주고, 후학들에게 가르쳐 전승해야 한다. 이들이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판을 깔아주는 지원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떠한 편견과 잣대가 작용해서는 안 되는 역할이다.

뜬금 없이 무형문화재를 장황하게 언급한 이유는 이렇다. 2020년 전 세계 사람들은 익숙했던 질서와 생활 패턴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바이러스 침공 탓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가는 닥칠 세상을 앞당겼는지도 모른다.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 세상’이 왔다는데, 가파르게 진행되는 비대면 사회 등 시대 변화에 따른 새 표준이 떠오르고 있다. 문화 분야도 다르지 않다. 특히 무형 문화자산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활용 범위가 확장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전통의 무형문화재 보존과 전승 쪽으로 눈을 돌리면 진한 아쉬움이 스친다.

‘혼(魂)으로 이어온 맥(脈)’. 수영구 광안동 금련산 자락에 자리 잡은 부산전통예술관의 존재 이유를 잘 드러낸 문구다. 이 멋진 말의 의미가 퇴색할 만큼 지원사업과 운영 방식이 주먹구구식이어서 눈총을 받고 있다. 특정 분야 무형문화재를 지원사업에서 연달아 배제하는 등 정작 예술관에서 전통의 맥을 끊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난해 4월 개관한 이 예술관은 부산에 있는 기능 분야 무형문화재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시가 건립했다. 시는 그동안 수영민속예술관 등 4개의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을 설립해 지원하고 있지만, 이들 교육관은 예능 분야에만 한정돼 있어 무형문화재 균형 발전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시는 2015년 기능 분야 교육관 설립 계획을 수립하고 3년의 준비 끝에 완성했다. 출범 의미가 각별하다.

민간위탁사업단체로 선정된 ㈔부산무형문화재연합회가 관리하고 운영하는 이 공간에는 자수장(국가 무형문화재 80호), 전각장(부산시 무형문화재 24호), 화혜장(〃 〃 17호), 선화(〃 〃 19호), 지연장(〃 〃 21호), 동장각장(〃 〃 26호) 등의 기능 보유자가 입주해 혼을 불태우고 있다. 낯설어 보이지만, 반드시 전승하고 보존해 맥을 이어가야 할 우리의 역사이자 전통이다.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국비와 시비가 투입된 전통문화체험교실 프로그램에 한국 선불교의 유산으로, 화법이나 서법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화풍이 특징인 선화 부문이 빠져 논란이다. 부산전통예술관 사무국은 관련 사업의 문화재청 신청 과정에서 선화 종목의 체험 프로그램 구성이 어려워 5종목만 신청했다고 한다. 이 분야 기능 보유자인 성각 스님은 “당사자에게는 의견도 묻지 않고 개인 잣대를 들이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앞서 부산전통예술관은 지난해 개관 직후 마련한 부산민속예술축제에도 성각 스님에게 통보 없이 다른 종목만 참석시켰다.

전통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역할을 맡은 부산전통예술관에서 유독 특정 분야를 연달아 홀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술한 운영 체계는 일단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예술관 관리를 맡은 단체 조직 구성원 간의 편견이나 알력 등이 배경에 깔렸다면 더 큰 문제다. 혼으로 이어온 전통의 맥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꼴이다.

장인 정신을 대표하는 인간문화재들이 지닌 자긍심은 대단하다. 당연히 다른 종목의 정신 세계 등을 스스로 존중하는 기개도 필요하다. 부산전통예술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잡음이 허술한 운영 체계에 따른 착오 탓이었다면 바로 잡고, 행여 편견이나 알력이 개입됐다면 부산시민을 위한 공익 공간으로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전통예술 발전을 위한 학예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뉴노멀의 세상에선 형태와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문화재의 잠재력이 상상 이상으로 큰 힘을 발휘할 게 분명하다. 당사자들이 무관심이나 불화, 지원기관의 착오 등으로 이런 기회를 저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논설위원 choonjin @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