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향 가득한 수제맥주를 맛보던 날, 미각 세계에 돌풍이 불었다. 과일 향이 향긋한 에일 맥주나 초콜릿처럼 달달한 흑맥주를 마실 땐, 맥주가 한 잔의 음식 같았다. 지난 5월부터 ‘부산 수제맥주 브루어리 탐방’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나름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셈이다.

부산은 ‘수제맥주의 성지’로 통한다. 몇 년 전부터 광안리 바닷가를 중심으로 들어선 수제맥주 브루어리들은 독특한 맛과 개성으로 애호가층을 넓혀 갔다. 부산에서 열리는 수제맥주 축제에서 다양한 수제맥주를 만나는 재미도 크다. 전국 ‘맥덕’이 부산으로 맥주 원정을 오는 현장도 목도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부산시는 지역 수제맥주를 유망 사업으로 분류하고 활성화 지원 부서를 마련했다. 2018년 영화의전당에서 ‘부산푸드필름페스타’의 한 섹션으로 시범 개최한 ‘수제맥주 마스터스 챌린저’가 그 첫발이다. 이 행사는 지난해 독립해 철도 구포역 광장에서 같은 이름으로 열렸다. 당시 서부산의 수제맥주 수요와 축제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개최가 불투명하다. 현재 축제 기획 등 업무는 부산경제진흥원 소상공인 지원팀이 맡아서 하고 있다.

올 초만 해도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전성기를 맞을 거란 전망이 우세했다. 원래 제조원가의 72%를 부과하던 종가세 형식(제조원가가 높아 세금도 많이 나왔다)에서 ℓ당 830.3원을 일괄 부과하는 종량제로 주세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소규모 브루어리들은 대체로 “절세 효과는 미미하다”는 입장이다. 거기에 코로나19 사태가 덮치면서 업계의 어려움은 가중됐다.

수제맥주 업계는 요즘 언택트(비대면) 문화와 소규모 행사에 주목한다. 대면 판매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수제맥주를 캔이나 병에 담아 고객에게 전달한다. 한 관계자는 ‘찾아가는 브루어리 축제’를 언급했다. 고객을 매료시킬 문화 콘텐츠를 연계하고, 할인쿠폰 등의 지원이 뒷받침되면 새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 해운대구 송정 해변이 한때 ‘서핑 성지’로 부상했지만, 지금은 강원도 양양에 추월당했다고 한다. 공간적 제약이 원래 있었던 데다 이와 관련한 자체의 지원이 미흡하자 서퍼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수제맥주라는 새로운 문화·관광 자산을 위해 어떤 자체 노력과 지원이 필요할까? ‘성지’를 지키려면 발 빠른 대응은 필수다.

김미주 기자 mj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