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43, 10. 난수표 같지만 서울의 중윗값 아파트 한 채를 사는 데 걸리는 햇수이다. 72는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 계층이 서울 중위값 아파트를 사는 데 걸리는 햇수이다. 43은 최저임금을 모아, 10은 가장 소득이 높은 5분위 가구가 중윗값 아파트를 사는 데 걸리는 햇수다. 서민은 이번 생에서 아파트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KB주택가격동향, 한국은행,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자료다.

지난 5월 현재 서울의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2000만 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의 6억600만 원과 견주면 3년 만에 3억1400만 원 올랐다. 같은 기간 전국 아파트 중윗값은 3억600만 원에서 3억6800만 원으로 6200만 원 올랐다. 국토부는 ‘근거를 대라’며 반박했지만 경실련으로부터 “문재인 정부가 투기를 조장했기 때문”이라는 면박을 받았다.

국토부가 주택 보유자에게 ‘세금폭탄’을 안기는 7·10 대책을 내놓은 뒤 오히려 아파트 값이 더 오르면서 일부 시민이 시위에 나서는 등 국민적 조세저항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인다. 심상치 않은 부동산 여론에 다급해진 정부가 서울의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흘렸다가 여권 내부에서 조차 비판에 직면했다.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이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다행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부동산 투기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은 현 정부의 핵심 인사들에 대한 ‘부동산 저격수’가 됐다. 김 본부장이 부동산 정책을 다루는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아파트로 많게는 수십억 원을 벌었다고 비판하는데 대한 명쾌한 해명은 보이지 않는다. 김 본부장의 지적은 부동산 정책 당국자들이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리고 있는데 어느 국민이 정부의 정책을 따르겠느냐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에 관한 한 현 정부는 ‘무신불립’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부동산 관련 전문가들이 부동산 안정화 대책이라며 자주 올리는 메뉴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라는 시장원리이다. 서울 아파트 값이 오르는 게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생긴 현상이라는 진단이다. 결국 논의는 서울 아파트 공급확대로 귀착된다. 이 연장선에서 서울 그린벨트 해제라는 엉뚱한 발상이 정부의 대책이랍시고 한참동안 시장을 흔들었다. 문 대통령의 ‘교통정리’로 서울 그린벨트 해제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후유증은 크다. 서초구와 강남권 그린벨트지역의 땅값은 부르는게 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 ‘호가’가 치솟았다.

수도권에 아파트를 지어 주택값을 잡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투기세력에게 새로운 먹잇감을 던져주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한 참 엇나간 진단을 내는 당국이야말로 투기세력이고, 투기 조장세력이라해도 무방하다. 국민 절반이상을 국토의 10% 남짓한 수도권에 몰아넣는 비극적 상황이 원인이다. 이 문제를 풀지 않는 한 수도권 집값을 잡을 묘책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물잔이 차는데도 물을 계속 부으면 넘치기 마련이다. 온전히 물을 채우려면 새로운 물잔으로 옮겨 부어야 한다. 콩나물 시루의 숨구멍을 막으면 콩나물 전부가 썩어 문드러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수도권의 숨구멍인 그린벨트까지 파헤치는 건 집값을 잡는 게 아니라 수도권을 죽이는 처사다. 문 대통령이 그린벨트 해제 불가입장을 내놓은 직후 정부는 다시 수도권의 국공유지 유휴시설을 택지로 개발하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린벨트가 막히니, 국공유 시설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이들은 당장 부동산 정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야 한다.

수도권 미친 집값을 잡는 길은 한가지뿐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부동산 수요를 지방에 분산하는 것이다. 수도권에 안 가면 살 수 없는 구조를 바꾸면 된다. 지방은 비고 수도권은 넘치는 현실을 지방을 채우고 수도권은 비우는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누구도 이 말을 하지 않는다. 부동산 정책 실패 주범이라는 말이 억울한가. 그러면 바꿔보라.

손균근 서울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