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 이 표현은 신문에 잘 쓰지 않는다. 대신 ‘숨졌다’ ‘목숨을 잃었다’ 정도로 쓴다. 기자가 되면 처음 배우는 기본 중 하나다. 보통 사건·사고 기사에 사용하는 표현인데, 끔찍하고 잔인한 것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그렇다. 그런데 최근 ‘죽었다’는 표현을 대놓고 신문에 썼다. 지난 4~6일 연재한 기획 시리즈 ‘산재는 기업 범죄다’에서다. 첫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2018년부터 올해 4월까지 2년 4개월간 부산에서 노동자 124명이 일하다가 죽었다’.

재범률 97%. 전국에서 하루 3명, 부산에서만 1주일에 1명꼴로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 산업재해(산업안전보건법 위반)다. 수많은 하청 노동자가 휴일·밤낮 할 것 없이 일하러 나갔다가 영원히 퇴근하지 못한다. 떨어지고 깔리고 끼이고 갇히고 부딪히고 질식해서 죽는다. 이 끔찍한 범죄를 제대로 알리려면, 적어도 ‘죽었다’고 써야 했다. 최대한 무섭고, 무겁게.

시리즈 제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내부 이견이 있었다. ‘산재는 기업 범죄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제목으로 올리는 게 타당하냐는 거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산재를 ‘기업이 저지른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다. ‘과실’ ‘불의의 사고’쯤으로 여긴다. 2017년부터 올해 5월까지 부산지역 법원에서 확정된 산재 사건 판결을 보면, 피고인 203명 가운데 단 1명도 실형을 선고받지 않았다. 노동자의 죽음을 ‘부주의’나 ‘미처 생각지 못한 사고’에 무게를 두고 판단한 결과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당연한 말은 반드시 시리즈의 제목이 돼야만 했다.

산재가 과실도, 불의의 사고도 아니라는 증거는 많다. 국제신문이 분석한 판결문 속 희생자들도 기업의 불법에 죽임당했다. 추석 연휴에 불려 나간 노동자는 안전대도 지급받지 못한 채 건물 외벽에 올랐다가 떨어져 죽었다. 안전 관리 책임자는 명절 연휴라는 이유로 출근하지 않았다. 참사가 예고된 현장에 ‘노동자만’ 출근했다. 부산 초고층 건물에서 작업대가 추락해 노동자 4명이 죽은 사고도 규정을 어긴 탓이었다. 작업대 부품 중 하나가 계획상 길이보다 훨씬 짧은 것이 임의로 제공됐다. 노동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201ｍ 상공에서 일했다. 이게 과실이며 불의의 사고인가.

같은 대기업 시공사의 건설 현장에서, 수년 전 비슷한 참사가 벌어졌던 그 공간에서 노동자는 오늘도 죽고 또 죽는다. 책임지겠다, 잘못했다는 사업주는 거의 없다.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중층적 도급 관계에서 죽거나 처벌받는 이는 언제나 ‘가장 아래에 있는’ 하청 노동자와 그들을 감독하는 또 다른 노동자다. 기업이 안전 관리에 돈을 들이는 것보다 노동자의 ‘목숨값’을 내는 게 더 편리하고 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법원은 이런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기는 한다. 판결문에도 언급된다. ‘단지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편의성만을 위해 안전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자에게 작업하게 함으로써 발생한 인명 사고에 대해 더는 과실범이라거나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안이라거나 근로자도 안전 수칙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관대하게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법원이 기업이나 사업주에게 선고하는 형량은 기껏해야 단돈 몇백만 원 벌금형에 그친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법이 그렇다. 법원은 법의 한계를 언급하기도 한다. ‘중층적 도급 관계의 상층부(기업·사업주)가 근본적인 재해 방지 능력과 의사결정 권한을 갖지만, 산재 특성상 실제 노동자들을 지시·감독하는 아래에 위치한 주체가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되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엄하게 처벌해야 할 기업·사업주를 ‘선처할 수밖에 없는’ 법이라면 효용이 없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양형 기준을 강화하고, 그걸로 모자라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래야 후진적 산재를 막고, 노동자의 안전한 퇴근을 지켜줄 수 있다. 여론이 달아오른 지금이 기회다. 사람 살리자고 만든 법이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면, 뜯어고치거나 아예 새로 만드는 게 옳다.

기획탐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