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 구체적으로 적으면 안 돼요.”

몇 달 전 핀테크 신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을 취재할 때 회사 관계자가 몹시 조심스러워했다. 까다로운 주택화재보험 가입을 스마트폰으로 10분 내 끝내는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자세한 내용을 물어도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힘들게 개발한 앱을 신문기사를 통해 충분히 홍보할 수 있음에도 감추려 드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최근 기술거래소의 부산 설립 논의(국제신문 지난 14일 자 1·3면 보도)를 취재하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시스템 개발까지 알고리즘이 복잡하지 않아, 기사에 상세한 내용을 적시하면 거대 플랫폼 기업이 기술을 베껴갈 수도 있어서 망설였던 것이란 걸.

국내 기술창업 환경은 극한에 처해 있다. 대기업의 고질적인 기술 탈취 탓에 도움닫기를 하려는 소규모 기업이 싹도 틔우기 전에 주저앉히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형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 탈취 피해 현황을 보니 이런 피해액이 매년 1000억 원에 이른다. 대형 플랫폼 기업이 기술개발 완성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에 접근해 “공동으로 개발해 파이를 나눠 먹자”고 제안한 뒤 기술 개발이 마무리될 시점에 “애초 우리가 알고 있던 기술”이라며 내치는 방식이다.

해법은 없나. ‘기술거래소’ 설립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스타트업이 개발한 기술을 인공지능이 먼저 평가하고, 1000명으로 이뤄진 ‘집단기술배심원’이 상용화 때 구매 여부를 투표하는 방식으로 가치를 매긴다. 이후 투자는 정부와 민간기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주식이나 파생상품처럼 공개적으로 기술을 거래할 수 있다면, 기술 탈취 등에서 투명해질 수 있다.

㈔한국핀테크연합회가 기술거래소 설립을 주도하고 부산시와 부산테크노파크, BNK부산은행 등이 동참 의사를 밝히며 논의를 구체화시키는 중이다. 입지는 부산문현금융단지 내 복합개발사업 3단계 건물이 유력하다. 적지 않은 금융 공기업과 은행이 1·2단계에 둥지를 틀었고, 기술평가기관인 ‘기술보증기금’과 ‘한국거래소’ 등의 본사도 부산이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아직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단계다. 블록체인규제자유특구 지정 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부산시로서는 정책 시행을 꼼꼼히 검토해 볼 만하다.

경제부 hongda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