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겨울 어느 날, 나와 연구실 동료들은 경남 하동 갈사만 앞바다에 있는 작은 바위섬에서 공룡뼈 화석 발굴조사를 마치고 집으로 태워다 줄 배를 기다렸다. 바위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무심코 앉아 있던 바위를 두드려 보다가 속이 비어 있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곧바로 그 암석의 윗부분을 조심스럽게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초식 공룡의 사체에 대한 육식공룡들의 순차적인 섭식 행위를 증명하는 이빨 자국’ 논문의 주인공인 용각류 공룡 부경고사우루스의 꼬리뼈 화석을 발견했다.
영국 BBC Nature의 한 과학 칼럼니스트가 우리의 논문 내용을 소개한 글에 인상적인 덧글을 달았다. 덧글의 요지는 ‘1억여 년 전 육식동물들의 섭식 전략이 오늘날 아프리카의 초원 지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유는 그 방식이 생태계에서 최적의 방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룡의 산란 습성이나 곤충들의 생태 등 공룡시대 동물들의 생태 특성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여러 공룡시대 화석들로부터도 확인된다.
최근에는 내가 수행한 울산 유곡동 백악기 공룡발자국화석산지에 대한 연구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곳에 함께 나타나는 초식공룡과 육식공룡 발자국 화석의 분포 특성에 대해 분석했더니 육식공룡이 오늘날의 호랑이나 표범처럼 단독 사냥을 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육식 공룡의 단독 사냥은 최근 미국의 연구진이 발표한 육식공룡 데이노니쿠스(영화 ‘쥐라기공원’에 등장하는 소형 육식공룡의 모델)의 이빨 화석에 대한 동위원소 연구에 의해서도 밝혀졌다.
우리 인류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과거 그 어느 시기보다도 눈부신 문명의 발전을 이룩해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복 지수가 결코 문명의 발전에 비례하지는 않음은 여러 조사 결과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즉, 선과 악의 양면을 가진 경쟁이라는 독소가 문명과 경제 발전과 함께 자라면서, 결국은 적정 수준을 넘어 오히려 우리를 해치는 단계로 와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인류가 지금 힘들게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에 의해서도 암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세계가 지금처럼 ‘One World’가 아니라 과거처럼 대륙간 인적 교류가 적절히 제한된 상태였다면 어떠했을까.
지구의 장구한 역사를 간직한 지층을 발달특성에 따라 나누는 방법 중 하나는 지층에 보존된 화석들의 변화 특성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있다. 그 한 예로, 특정 화석의 산출량이 가장 많이 나오는 지층이 발달한 구간을 그 화석생물의 번성대(전성대, acme zone)라 부른다. 그렇다면 과연 그 번성대의 시간이 그 생물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번성대란 그 생물이 대량으로 살아 있을 때의 기록이 아니라 대량으로 죽었을 때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질시대를 통해서 많은 화석생물들이 번성대 이후에 멸종의 시기로 접어든 경우는 드물지 않다.
지층에 남겨져 있는 과거 지구환경의 변화기록에서 우리는 미래의 지구환경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그중 하나는 A의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다른 B로의 환경 변화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기보다는 A와 B의 환경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다가, A 환경의 지속시간이 점차 짧아진 후, 어느 날 완전히 새로운 B의 환경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과 지금은 사회적으로나 자연환경에서나 여러 측면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만일 코로나 사태가 진정이 된다면, 다시 그 이전의 환경으로 일정 기간 회복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과거를 쉽게 망각한다. 우리가 다시 과거를 망각한다면, 지금보다 더 혹독한 시간이 지금보다 더 오래 이어질지도 모른다.
과학계 일각에서는 현재를 ‘인류세의 시간’이라 말한다. 그러나 지층에 남게 될 지질시대로서의 인류세는 인류의 번성기가 아니라 인류가 쇠퇴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그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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