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장은 현재 연임이 세번까지 가능하다. 최대 12년까지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민선 3기가 끝나갈 무렵 전국의 단체장 27명은 공무담임권과 평등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인정하지 않았다. 지방선거가 현직에 절대 유리해 장기 재임과 부패 위험이 높고 다른 사람에게도 진출 기회를 줘야 하기 때문에 연임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정치권에서는 3연임도 길다며 2연임으로 축소하려는 시도를 몇번 했다. 2001년엔 새천년민주당이, 2014년엔 새누리당이 추진했다. 지금의 여야가 따로 없었다.

“고인 물은 필연적으로 썩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진리가 지방정부의 단체장에게만 적용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5년 단임의 대통령보다 선수 제한 없는 국회의원이 더 힘세다는 말도 있다. 국회의원 연임 횟수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건 아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바른정당 시절 이런 아이디어를 냈고 20대 국회에선 국민의당 이용주 전 의원이 동일지역구 4연임 금지를 발의했다. 최근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제출했다. 미래통합당은 4연임 금지 조항이 포함된 정강정책 초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때 발의된 법안은 소리소문없이 폐기됐고 지금 정치권에서의 논의도 크게 이슈가 되지 못한 채 유야무야되는 분위기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연임 제한은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단체장 연임 축소에는 열을 올리는 이유는 토착 비리 방지라는 명분 말고 다른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다선 단체장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거슬러 클만한 여지를 안 남기겠다는 것이다. 만약 법을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민이 직접 만든다면 공무담임권 제한이 지자체장에게는 필요하고 국회의원에겐 불필요하다는 데 찬성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국회의원 300명의 직업 분포를 보면 비율이 가장 높은 게 ‘정치인’이다. 최근 들어 고위 공직자나 전문직 출신이 많아졌다지만 정치인에 비하면 소수다. 대학을 졸업하고 정당이나 선출직 주변에서 정치를 정치로 배운 사람들이 국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전국시대 식객들처럼 권력 가까이 어슬렁거리다가 빈자리가 생기면 헤집고 들어가거나 주군의 자리를 이어받는 식이다. 지금도 국회를 위성처럼 맴도는 사람들이 중앙이건 지방이건 너무 많다. 이들에게 정치는 그저 호구지책일 뿐이다.

어느 집단을 막론하고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목적하는 본연의 일에 충실한 부류와 인간관계가 만들어내는 사내 정치에 몰두하는 부류다. 비극적인 것은 내부 정치 몰두형이 좋은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다선 의원이 딱 그런 케이스다. 의원 업무의 본질은 입법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당내 계파 싸움이나 줄서기에 더 집착한다. 그러는 사이 사람 좋다는 자체 평가를 획득하며 어렵잖게 공천을 따낸다. 영남이나 호남같은 특정 정당의 텃밭이라는 곳에서 유독 다선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당내 입지만 탄탄하면 국민과는 동떨어져도 상관 없다. 공천이 곧 당선이기 때문이다.

법안 발의나 통과율, 국회 출석률 등을 따졌을 때 성적이 상위권에 랭크되는 의원은 부울경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3선 이상 중진 중에서 찾기 힘들다. 무려 7선으로 30년 가까이 정치를 해온 집권여당의 대표 입에서는 예민한 질문을 하는 기자를 향해 서슴없이 욕설이 나온다. 여성 최다선 기록 보유자인 현직 법무장관은 “내 명을 거역했다”며 조선시대에나 쓸 법한 언어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용한다. 달력이 같다고 같은 시대를 사는 게 아니다. 선수를 쌓아가면서 민심과 유리되고 세상과 격리되는 게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본면목이다.

올해 국회의원 연봉은 1억5188만 원이다. 법률로 보장된 각종 특혜를 빼고도 일당이 무려 54만 원이나 된다.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겨우 130원 올라 시간당 8720원에 그쳤다. 일당으로 치면 7만 원이 채 안된다. 국회의원은 최저임금의 8배 가까운 임금을 받고도 국민의 불신을 당한다. 불리하다 싶으면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며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무노동 무임금법, 상임위 불출석 방지법을 내놓지만 공허하다.

선진국 중에서 국회의원 연임 횟수를 제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도 일부 주를 제외하면 제한을 두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시 원칙으로 따지면 연임 제한이 더 어색한 일이다. 그런데도 국회나 정당 차원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건 그들 스스로가 선수만 쌓인 정치꾼들의 폐해를 잘 안다는 반증일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입만 열면 하는 말마따나 진정으로 국리민복을 위해 일한다면 종신인들 국민이 뭐라 하겠는가.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