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묵혔던 이야기를 이제 꺼내야 할 것 같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 뉴스를 보면서 그때 일들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두 가지 사건을 경험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미투’였다. 모두 신문에 보도되지 않았다.

두 사건은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했다. 공통점은 하나. 부산시와 관련된 조직의 남성 기관장이 여성 직원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그때는 그 사건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 잇따라 터진 미투 사건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깨닫게 됐다. 바로 미투 사건의 본질이다.

우연히 두 사건을 접하게 된 나는 피해자들에게 성추행 내용을 공개하자고 했다. 피해자들은 극도로 꺼렸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그 두려움의 정체가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당시는 여성이 성추행을 당하면 피해자 편에 서기보다 “처신을 어떻게 했길래…”라는 반응이 적지 않게 나올 만큼 ‘미투’와 ‘피해자 보호’ 개념이 희박했다.

나의 짐작은 틀렸다. 피해자들이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을 느끼긴 했지만 큰 부분은 아니었다. 그들이 가장 무서워한 것은 성추행 공개 이후의 보복이었다. 성추행을 공개했는데 가해자가 큰 처벌을 받지 않고 같은 조직 안에서 계속 근무하게 되면 어떤 보복을 당하게 될지 몰라 두려워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신분에 직접적인 위협을 줄 수 있는 조직의 수장이었다. 반면 피해자들은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약자들이었다.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공포의 대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피해자들이 가진 두려움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을 종용했다. 심지어 “그냥 넘어간다면 다음에 다른 피해자가 또 발생할 것이다. 그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말로 죄 없는 피해자들을 다그치기까지 했다. 그래도 그들은 공개를 꺼렸다. 나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제시했다. 경찰 조사를 통해 형사 처벌을 받게 하거나 내부 감사를 동원해 해임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피해자들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그만큼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두 사건은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다.

이제야 두 사건을 기억 속에서 소환한 이유는 미투 사건의 본질을 되짚기 위해서다. 미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젠더 감성이 부족하다는 식의 발언이 등장한다. 그 말도 일부 맞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아니다.

내가 겪은 사건은 미투의 실체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보여줬다. 그건 권력을 가진 가해자가 약자인 피해자에게 가하는 폭력이었다. 그 폭력의 형태가 성추행이었다. 최근 발생한 미투 사건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거돈 전 시장을 포함해 가해자들은 모두 조직의 수장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피해자는 그 대척점에 선 약자였다. 가해자들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앞세워 약자인 피해자를 벼랑 끝에 세워놓고 괴롭혔다.

불행하게도 그런 폭력은 미투 사건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최근 스포츠계를 뒤흔든 고 최숙현 선수 사건도 본질은 권력을 가진 자의 횡포다. 나는 적지 않은 시간 스포츠 현장을 취재했다. 눈앞에서 지도자가 선수를 폭행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하는 장면도 목격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우두커니 지켜보기만 했다. 가끔 나 자신에게 그때 왜 가만 있었는지 물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미투와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은 빙산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미투와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은 아주 많을 것이다. 당장 나의 경험이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본질을 알았으니 이젠 바꿔야 한다. 힘을 가진 자가 마음대로 권력과 폭력을 휘두르는 사회적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 첫걸음은 피해자가 가진 두려움을 덜어주고, 그들의 힘겨운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보호하는 것부터다. 더는 피해자를 외롭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뉴스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