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영화 ‘블랙팬서’에서 국왕 티찰라 경을 맡아 자갈치시장과 광안리 해변, 광안대교 등 부산의 주요 명소에서 멋진 추격전을 벌였던 영화배우 채드윅 보즈먼이 지난 28일 사망했다.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진 보즈먼은 죽은 뒤에야 2016년 대장암 3기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대장암 선고 뒤에도 4년 동안 수술과 항암치료를 병행하면서 작품 활동을 꾸준히 펼친 터라 그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2017년 3월 부산에서 일부 내용을 촬영해 ‘부산팬서’라는 별칭을 얻은 ‘블랙팬서’ 제작 당시 보즈먼은 암 투쟁 중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시 학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의 등쌀에 못 이겨 부산에 등장한 영웅을 눈앞에서 맞이하기 위해 촬영 현장 나들이에 나선 기억이 새롭기도 하겠다.

인종차별에 맞선 실존 흑인 인물을 많이 연기한 그는 영화 속에서 ‘흑인 히어로’였다. 보즈먼은 2017년 개봉한 영화 ‘마셜’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연방대법관 서굿 마셜을 연기했으며, 2014년 작품 ‘겟 온 업’에서는 흑인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브라운을 소화했다. 소울과 펑크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한 브라운은 음악계 히어로다.

보즈먼은 앞서 2013년 개봉한 영화 ‘42’에서 흑인 메이저리거인 재키 로빈슨으로 분해 세상에 처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1947년부터 1956년까지 활약한 로빈슨은 메이저리그에서 흑인 선수의 벽을 깬 선수로 유명하다. 로빈슨의 등 번호인 42번은 현재 메이저리그 전체 영구 결번이 될 정도로 그의 존재가치는 크다.

보즈먼은 메이저리그 ‘재키 로빈슨 데이’에 사망했다.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매년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빈슨의 메이저리그 데뷔전 날짜)로 기념해 선수들이 유니폼에 42번을 달고 경기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8월 28일로 미뤄졌던 것이다. 은막 속 흑인 히어로의 시작과 끝이 묘하게 연결되는 분위기다.

영화처럼 짧은 생을 파란만장하게 보낸 흑인 히어로는 사라졌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고 있어 답답할 따름이다. 최근에는 미 위스콘신주에서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가 백인 경찰이 쏜 총에 하반신이 마비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인종차별에 항의해 단체로 경기 출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흑인 히어로의 활약상이 아직도 요구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강춘진 논설위원 choonj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