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선 ‘9’를 상서로운 숫자로 여긴다. 하나라의 시조 우왕이 만들었다는 구정(九鼎)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은 3개의 발과 2개의 귀가 달린 솥이다. 우왕은 황하 치수에 성공한 뒤 천하를 9개의 주로 나눠 통치했는데, 구주의 수장들이 바친 진귀한 금속으로 주조한 게 구정이다. 구정은 상나라와 주나라로 전해지면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보물이 됐다. 9는 황제의 숫자인 셈이다.

이런 9가 겹친 음력 9월 9일, 중양절(重陽節 ·양수인 9가 중복되는 날)은 길일 중 길일이다. 이 날은 액운을 막기 위해 수유 주머니를 차고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신다. 등고회(登高會)라는 풍속이다. 국화주를 마신다 하여 중양절을 국화절이라고도 한다. ‘술은 백가지 근심을 떨어 없애고/국화는 늙음을 억제해 준다네’.(‘구일한거(九日閑居)’) 동진 때의 시인 도연명은 중양절을 좋아했다. 하지만 가난하여 국화주를 마실 수 없었다. ‘구일한거’는 그런 회포를 담아 쓴 시다.

9라는 숫자를 싫어하는 사람이나 그런 풍속을 가진 나라도 많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1907년 아홉 번째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9’라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대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의 부인 알마의 증언에 따르면, 베토벤 브루크너 드보르자크 등 자신이 존경한 작곡가들 모두가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죽었기 때문이다. 9를 죽음의 숫자로 인식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아홉 구(九)와 괴로울 고(苦)의 음이 ‘쿠(く)’로 같아서 9를 꺼린다. 우리 역시 9나 19 29 등 9가 들어간 숫자를 ‘아홉수’라고 하여 금기시한다.

코로나 시대에도 9는 불길한 숫자로 새겨지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병명에 9가 들어간 데다, 9월이 2차 대유행 단계로 사태가 악화될지 여부를 가름하는 고비가 될 것으로 보여서다. 가장 큰 문제는 감염원을 모르는 ‘깜깜이 전파’ 비중이 전국 평균적으로 25%에 달한다는 것이다. 서울은 그 비중이 32%나 된다. 해서 오는 6일까지를 ‘천만시민 멈춤 주간’으로 정했다. 감염 확산 기세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면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는 파국이 초래될지도 모른다. 천길 협곡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심정이다. 그 외줄 위에 9월이 있다. 우리는 외줄에서 추락하지 않고 ‘코로나 협곡’을 무사히 건너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적 방역연대가 필요하다. 그래야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청정 10월’을 꿈꿀 수 있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