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시티와 광역경제권이 지역의 화두다. 부산 울산 경남 3개 시·도가 지난 5월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을 위한 공동 연구용역에 들어가면서 관심을 끄는 모양새다. 여기에다 대구·경북을 포함한 광역단체장 5명이 지난달 5일 ‘영남권 통합 그랜드 메가시티’ 조성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부산상공회의소도 지난 19일 부울경 경제공동체를 만들자는 정책제안을 내놨다. 이들 모두가 같은 권역의 자생적 발전기반을 마련하려는 취지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수도권 블랙홀’과 그 뿌리인 중앙집권체제를 극복하려면 지역이 광역 단위로 뭉치는 게 당연하다. 자원과 재원이 한정된 자치단체로서는 인접 지역과의 연계로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게 활로가 되어서다. 여야 정당으로 나뉜 영남권 시·도지사가 5년 만에 함께 모여서 낙동강유역권 상생 발전과 상·하류 간 ‘물 문제’ 해결에 한 목소리를 낸 것도 그런 절박성의 분출로 읽힌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보는 마음은 그리 가볍지가 않다. 과거처럼 그럴 듯하게 출발했다가 결국 흐지부지되거나 용두사미로 흐를 우려도 커서다. 사실 광역경제권 구축은 부울경에서 어제오늘의 과제가 아니다. 단체장 사이의 선언적 합의도 숱하게 나왔다.

돌이켜보면, 광역경제권 전략은 15년 전 참여정부 때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여기에 동남권 3개 시·도가 손을 맞잡았다. 경제관계관 협의회가 정례 운영되면서 물꼬를 텄다. 이를 통해 데이터베이스 공동 구축, 해외 무역사무소 공동 이용, 합동 통상세일즈, 조선분야 광역클러스터 같은 사업에 합의하면서 기대를 받았던 게 사실이다. 더욱이 3개 시·도 산하 싱크탱크는 2007년 공동연구의 결과물로 구체적 실천방안까지 제시했다. 광역권 산업 육성·지원 조례 제정, 광역경제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행정시스템인 광역거버넌스 구축, 광역교통기구 설립·운영 등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대로 실현된 것은 드물다. 제한적 범위의 일부 공동사업을 제외하고는 성과가 미미하다. 실질적 광역협력체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민선 5기가 출범한 2010년 이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5년에는 부울경을 하나로 묶자는 메가시티 비전이 발표됐지만, 구호만 요란했을 뿐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겉으로는 상생 협력을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각자 행정 칸막이와 이해관계의 틀에 갇혀 있는 요인이 크다.

부울경 시·도 연구기관이 13년 만에 동남권 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종전과 같이 실천이 담보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되기 십상이다. 그 점에서 관(官) 주도가 아닌 민간 중심의 추진·실행기구가 절실하다. 권역 내 산업체와 대학, 관련기관 등의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행정구역을 초월한 민간이 이끌어 나가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그간 일본의 광역클러스터 구축을 비롯한 해외 모범사례들이 그걸 말해준다. 지난해 부울경의 민간 주도로 출범한 ㈔동남권발전협의회의 역할과 활성화에 희망을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앙정부도 이제는 정책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전환해야 옳다. 국책기관인 산업연구원은 이미 10년 전에 정부의 지역산업 정책을 시·도 중심에서 광역경제권 중심으로, 개별 산업 육성에서 광역클러스터 연계 체제의 핵심 산업군 육성으로 바꿔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시·도 단위의 파편적이고 틀에 박힌 정책 대응으로는 경제력의 수도권 집중, 특히 중추기능의 수도권 집중은 억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거듭 말하지만, 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이 지속돼서는 미래가 암울하다. 그 구조를 깨려면 동남권, 더 나아가 영남권을 명실상부한 제2의 수도권과 새 발전축으로 만드는 게 상책이다. 즉, 젊은층이 일자리와 대학진학을 목적으로 수도권에 가지 않아도 되는 토양을 일궈내야 한다. 이는 권역의 핵심 도시들과 주변 군소 도시들이 각 분야에서 기능적으로 연계되고 교통이 수월한 광역경제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래야 수도권에 대응하는 동남권 메가시티를 이루고, 지역의 살 길이 열릴 거라고 믿는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광역경제권 구축은 이미 세계적 대세다. 수도권 외 다수의 거대 지역경제권 조성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지역 균형발전을 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광역연합형 경제공동체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 요소다. 도쿄권에 대응한 일본의 간사이 광역연합은 타산지석이다. 민간이 광역경제권 구축을 주도하되 각종 개발사업과 환경, 교통망, 자원과 물 이용 등의 인프라 부문에서 지역 간 협력을 도모하는 것은 광역행정연합체가 효과적인 방법임이 분명하다. 이들 두 개 축이 맞물려 돌아가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터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