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나이는 46억 년이다. 인간의 역사는 겨우 200만 년 정도다. 원시인들의 작은 뼛조각과 그들이 사용한 석기(돌)로부터 그 역사를 짐작한다. 현재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이집트 피라미드다. 약 5000년 전에 만들었다. 피라미드 재료는 우리가 잘 아는 암석(석회암과 화강암)이다. 만약 피라미드를 다른 재료로 만들었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특히 화강암이 아닌 청동이나 철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청동과 철로 만들었으면 피라미드가 현재까지 남아 있었을까. 당연히 지구의 거대한 환경시스템에 의해 부식과정을 거쳐 사라졌을 것이다. 왜 금속으로 만들면 부식되어 소멸하는 것인가.

최근 경주의 서봉총을 재발굴한 결과 신라인들은 남생이 복어 돌고래 등을 먹고 제사를 지낸 것으로 밝혀졌다. 서봉총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금관이 발견된 곳이다. 1500년이 지난 신라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은 금과 인간의 유골, 동물의 뼈 정도이다. 나머지는 다 부식 소멸됐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서 배웠듯이 인류의 역사는 석기·청동기·철기시대로 나뉜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유물은 땅속, 즉 조개무지(패총)나 무덤에서 발견됐다. 만약 지상에 노출되었으면 유물들은, 특히 금을 제외한 다른 금속들은 부식되어 소멸됐을 것이다. 토기나 도자기류도 풍화작용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럼 역사를 미래로 돌려 수백만 년 후로 간다면 미래 인류학자들은 21세기를 뭐라고 얘기할까. 답은 간단하다. 분명 플라스틱시대나 고분자시대라고 할 것이다. 현시대는 우리가 예전부터 사용해오던 석기(세라믹포함)·청동기(구리·알루미늄 등 비철소재)·철기 제품보다 플라스틱 고분자 제품을 수백 배 많이 사용하고 있다. 주변이 온통 플라스틱 제품이다.

우리는 어떤 제품을 제조할 때 원소재를 대부분 자연에서 얻는다. 원시시대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나 진흙, 돌을 이용했다. 기술이 조금 발전하여 녹는 점이 낮은 주석(Sn)이나 구리(Cu)를 이용한 청동시대도 열었다. 또 자연 토철광에서 철을 용융하여 철제품을 만들었다. 18세기쯤 전기기술의 발명으로 알루미늄 등 다양한 금속을 추출하여 재료의 사용범위를 높였지만 이들 재료 역시 결국 자연에서 얻는 것이다. 자연에서 얻었기에 결국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현재 가장 많이 쓰는 철은 복합 산화물인 원광석을 다양한 환원처리 과정을 통하여 얻는다. 이런 철은 사용이 끝나면 자연 속에서 부식 산화(녹)되어 다시 돌가루가 된다. 다시 말해 금속은 돌에서 채취되고 다시 돌가루가 되어 소멸한다. 암석 역시 끊임없는 풍화작용을 거쳐 결국은 한 줌 모래로 변한다. 자연에서 얻는 재료들은 지구의 대자연의 순환시스템에 의해 순환되는 것이다.

문제는 플라스틱 고분자이다. 플라스틱은 자연에서 얻어진 게 아니다. 1900년 초 발명된 합성수지 베이크라이트가 최초의 플라스틱이다. 인간이 만든 최초의 인공물질이다. 그 구성성분은 대부분 탄소, 수소, 산소(C,H,O)로 이루어졌지만 인공으로 만들었기에 자연 분해되지 않는다. 같은 C,H,O로 이루어진 자연유기물은 작은 곤충이나 박테리아 등 미생물에 의해 유용한 거름으로 분해된다. 반면 플라스틱 고분자를 자연 분해하는 자연상의 미생물은 아직 없다.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의 순환시스템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고분자를 쉽게 제거하는 방법은 고열에서 소각하는 것인데, 이때 심각한 대기오염과 다이옥신을 방출하게 되어 결국은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

인류는 과학기술로 발견하거나 합성한 모든 원소를 이용해 다양한 원소재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제품화한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원소들은 어떤 형태든 소멸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고분자 소재이다. 이들 재료를 친환경적으로 자연 분해되는 방법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 수명이 거의 무한대이다. 지구를 플라스틱 더미에서 구하려면 인간이 그 사용 빈도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의 수명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되고, 결국 인간의 발명품이 인간을 파괴하는 자충수로 돌변할 것이다.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