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에 치러진 21대 총선을 두고 아직까지 해석이 분분하다. 당시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정당이 국회의원 정수의 70% 넘는 의석을 차지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승부이긴 했어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결과였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대응한 문재인 정부의 대처에 국민이 지지를 보냈다는 해석이었다. 정부의 체계적인 방역 관리가 총선 승리의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비전문가의 시각에도 그 같은 분석은 그리 틀리지 않아 보인다.
한데, 21대 총선 결과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리 국민의 정치적·경제적 이데올로기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한국의 정치적 지형을 감안할 때,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를 해석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뜬금없는지 모르지만, 국민의 정치적·경제적 이데올로기 변화의 출발점은 세월호 참사가 아닌가 싶다. 이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300여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대형 재난이다. 특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이 숨져 온 국민의 마음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세월호 조사단의 조사 결과는 초기 대응 시간 지연,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해경의 소극적 구조, 정부의 뒷북 대처로 요약된다. 그야말로 총체적 부실이 빚어낸 최악의 인재(人災)였다.
코로나19와 세월호 참사의 공통점은 예견하지 못한 비상 상황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해결하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국가와 정부의 역할이다. 국가와 정부는 국민의 생존권을 지켜야 하는 최후의 보루다. 세월호 침몰의 주범은 국가와 정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는 꽃다운 나이의 학생 수백 명이 사망한 비극적 참사의 공동정범이라는 인식으로 사후관리를 해야 했다. 하지만 국가와 정부는 적극적 문제 풀이를 외면했다.
반면 코로나19 비상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국가와 정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애쓴 흔적을 남겼다. 21대 총선 결과는 그런 노력에 대해 국민이 준 보상이 아닐까 싶다.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19는 국민의 정치적·경제적 이데올로기를 ‘국가주의’에서 ‘국민주의’로 바꾼 듯하다. 우리 국민은 20세기 초반 30여 년을 나라도 없이 떠돌았고, 나머지 절반은 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은연중에 국민의 마음속 깊은 곳엔 나라를 지켜야 산다는 수호 의식이 뿌리박혔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국가를 먼저 생각했고, 정치와 경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국가 부강에 헌신했다. 이런 국가 우선주의의 집단 이데올로기를 고착시키고 부추기면서 적절히 활용해 자신의 개인적 재물욕과 권력욕을 채운 극단적 이기 집단도 많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대다수 국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 생존을 위해 국가와 정부가 무엇을 해줄 것이냐로 이동했다. 국가주의에 몰입된 집단에서는 포퓰리즘이라고 폄훼하지만, 이데올로기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엄연한 현실이다. 국가부채 증가보다는 당장 눈앞의 생존에 더 관심이 있고, 국가경제성장률보다는 개인 월급이 더 중요하다. 우리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여러 명분을 붙여 국민 개개인에게 코로나 지원금을 지급하는 배경도 여기 있다. ‘헬리콥터 머니’를 선심정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얘기다.
국민주의의 핵심은 국가, 정부,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국민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도록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IT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정보가 개인에게 공개되어 있고, 의사 표시의 출구도 다양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론의 변화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도 이런 사회시스템 변화에 기인한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이 같은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기득권에 안주해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정부, 정당, 재벌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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