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여파가 길다. 감염 우려로 사람 이동이 제한되니 물류 흐름마저 정체된다. 생산설비는 놀고 서비스업체는 서비스 받을 사람을 찾지 못해 한산하다. 이러한 상황의 결과는 불행하게도 마이너스 경제성장이다.

코로나19를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쯤으로 여겼는데, 알고 보니 긴 장마의 시작인 것 같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늘에서 물폭탄까지 떨어졌다. 이웃나라 중국은 한 달 이상 내린 폭우로 양쯔강이 범람해 수재민이 5500만 명에 이르고 재산피해도 24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부산에도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졌다. 동천과 수정천이 범람했고, 온천천은 수시로 물바다가 되었다. 개울가 주변 도로와 주택·상가가 침수하고, 악덕기업주들이 비오는 틈을 타 몰래 방출한 화학물질로 물고기들이 떼죽음 당했다.

맑은 날의 부산은 어떨까. 깨끗한 물이 흐르게 한다고 수개월째 공사를 한 동천의 물은 여전히 구정물 수준을 넘어 희멀건 횟가루를 뿌려놓은 듯 오염된 탁수다. 도심의 상점을 둘러보자. 도로 옆에 설치된 맨홀이나 군데군데 하수구 뚜껑을 덮은 그레이팅을 지날 때는 하수구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 현명한 가게주인들은 자기 가게 앞 뚜껑 주변에 고무판을 덮어 역겨운 냄새가 상점 안으로 못 들어오게 막아놓기도 했다.

이게 부산 구도심 하수도와 시내 하천의 현 주소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그린도시 부산’에서 찾아야 한다. 살기 좋고 쾌적한 ‘환경도시 부산’을 만드는 것이다. 부산판 그린뉴딜(Green New Deal)을 통해 하수도를 체계적으로 재정비하자. 하수도 전면 재정비는 일자리 창출은 물론 환경산업과의 연관효과도 크다. 공원을 많이 만들고 나무만 심는다고 그린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 디지털화를 추진하고 자율주행차가 도심을 질주한다고 해서 그린도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도심 내 땅 밑이 썩어가고 하수구 폐오수의 악취가 진동하는데, 땅위에 휘황찬란한 고층건물과 현대문명의 이기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그린도시란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고, 악취가 없어 숨 쉬기 편하고, 미세먼지가 없는 푸른 도시이다. 해결 방안을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 모범적인 곳이 있다면 따라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창조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독일의 환경도시 프라이부르크를 벤치마킹하거나 프랑스 파리의 하수관 체계를 도입해도 좋을 것이다.

아파트 주방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물과 찌꺼기 빠지는 구멍속에 금반지를 실수로 빠트렸다. 그 사실을 소방서에 신고했다. 소방서에는 하수관로와 전기·가스·통신배관 위치를 알 수 있는 지하매설물 지도가 있다. 아파트 몇 층, 몇 호의 수돗물과 음식물 찌꺼기가 어느 지점의 하수관로를 거쳐서 강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금반지를 어디에서 찾았다고 소방서에서 연락이 온다. 파리의 하수도 시스템을 홍보하는 영상 내용이다.

파리 시내 중심가에 하수도 박물관(Musee des Egouts de Paris)이라는게 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과 만화영화 ‘라따뚜이’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에펠탑 인근 센강변 땅 밑에 있는 하수도박물관은 파리 시내 실제 하수도의 한 구간인데, 지하 500ｍ를 따라 내려가면 고대부터 현대까지 파리 하수처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하수구 청소법과 맨홀에 귀중품을 빠트렸을 때 찾는 방법까지 설명해 놓았다.

콩코드광장과 샹젤리제 거리의 지하에는 지상의 도로와 비슷한 지하도로와 하수관이 매설되어 있다. 지하도로 곳곳에는 지상과 똑같은 거리이름이 적혀 있어서, 자신이 현재 파리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도 알 수 있다.

1800년대 프랑스도 하수시설이 발달하지 않아서 오물과 각종 하수 때문에 골치를 앓다가 오스만 시장 때 지금의 하수도 체계를 만들었다. 파리 시내의 거리마다 지하 하수도가 깔려있는데, 육상의 도로보다 하수도가 더 많다. 파리시내의 도로가 1400km인데 하수도 길이는 2400km다. 왜냐하면, 필요에 따라 한 도로에 2,3개의 하수도가 있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파리의 하수도는 인체의 내장기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는 고층건물에 겉만 번드레하다고 좋은 게 아니다. 살기 좋은 도시란 시민이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이 잘 갖추어진 곳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도시는 왜 그렇게 만들 수 없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부산은? 인프라에 투자할 돈이 없다고? 과거 어떤 대통령은 녹색성장한다고 4대 강에 22조 원이상 투입해 삽질한 적도 있다. 꼭 국가예산이 아니더라도 돈 만드는 방법은 찾으면 나온다. 코로나19로 전 국민이 수조 원에 달하는 긴급 재난지원금도 받지 않았던가. 부산을 ‘그린도시 부산’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