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닥쳤을 때 고리 월성 등 6기의 원전 가동이 중단된 건 염해 때문이라고 한다. 바람이 몰고 온 염분이 송전시설에 달라붙어 불꽃이 튀는 섬락(閃絡) 현상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전기 공급이 끊겨 원전이 멈춰섰다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의 골자다. 원안위는 주변압기의 송전선을 외부에 노출시켜 놓은 것이 염해의 주요 원인이라고 했다. 바닷가에 원전을 지으면서 기본 중 기본인 염해 대비도 하지 않았다니,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불신을 누르기 어렵다.

전기 공급이 중단됐을 당시 다행히 비상발전기가 가동돼 원자로 냉각 기능은 유지할 수 있었다. 비상발전기의 침수로 냉각 기능이 상실돼 원자로가 녹으면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된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력 공급이 끊겨 원전이 멈춰선 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동일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시행한 보강 공사 때 왜 노출된 송전시설을 개선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사고 원인은 태풍에 의한 급속한 염해이지 설계나 시공, 관리 부실과는 관련이 없다”고 한다. 가동이 중단될 정도로 염해에 취약하다면, 그것이 바로 설계·관리 부실의 증거다. 바닷가라는 입지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송전시설을 외부에 노출시킨 건 명백한 설계 하자다. “외부 노출부를 최소화하겠다”는 원안위의 대책이 이를 시인한 것 아닌가. 그러고선 송전시설에 염분이 달라붙는지 상태 점검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관리 부실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나라 동해안은 원전 18기가 포진해 있는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대다. 그런 곳이 태풍의 주요 경로상에 있다. ‘마이삭’과 ‘하이선’도 동해안을 강타해 많은 피해를 냈다. 기후변화로 동해안의 태풍 피해 위험성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이런데도 설계·관리 부실은 없다는 해명 같지 않은 해명을 늘어놓고 있으니, ‘대책 부실’ 책임까지 추궁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