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400만 명에 육박하던 부산 인구가 이제 340만 명도 위태로울 만큼 감소세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된 올해 1~8월 수도권으로 거주지를 옮긴 부산시민이 1만 명을 넘어섰다. 이중 75%가 20·30대 청년층이라고 한다. 미래세대가 고향을 등진 이유 중 하나는 일자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부산 실업률은 지난해 8월(2.1%)보다 1.6%포인트 급등한 3.7%로 집계됐다. 전국 실업률은 3.1%였다. 월간 기준으로 부산 실업률이 전국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조선업 구조조정의 여파가 지속된 2017년 11월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부산상공회의소도 최근 부산 기업들의 영세성과 현주소를 보여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발표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나이스 신용평가사의 기업 정보를 토대로 산출한 ‘매출액 전국 1000대 기업 중 부산기업 현황(2019년 기준)’이 그것이다. 결과를 보고 부산의 기업인으로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지난해 부산의 매출 1위 기업은 르노삼성자동차(4조6777억 원)였다. 유일하게 전국 100대 기업에 포함됐다. 매출 1조6095억 원을 기록한 한진중공업이 부산기업 랭킹 3위를 차지했을 뿐 나머지는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역별 매출 총액이다. 부산 기업 전체 매출(31조7845억 원)은 서울(1467조5987억 원)의 2.2%에 불과했다. 경남(51조8153억 원)과 비교해도 61.3% 수준에 그쳤다. 기업당 평균 매출액도 부산이 전국 11위로 순위가 추락한 상태였다. 부산 경제의 전국 비중이 20%대까지 육박했던 1980년대와 비교하면 부끄러운 통계다.

매출액뿐 아니라 주력 업종 역시 미래를 기대하기에는 부족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성장 잠재력을 주목받고 있는 바이오산업이나 반도체·그린뉴딜·친환경에너지와 같은 신산업 분야의 부산 기업 비중은 미미했다. 품목별 수출통계를 봐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선정한 ‘신성장 산업’과 ‘수출성장동력 산업’에 속한 부산 기업은 드물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부산의 총 수출액은 연평균 3.9% 감소했다. 외형상으로는 신성장 산업으로 분류되는 품목군의 수출실적이 3.6% 늘어났다. 문제는 신성장 산업의 수출 위상이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대단히 낮은 수준이라는 데 있다. 지난해 부산지역 신성장 산업 수출실적은 25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126억 달러인 서울의 1/5에 불과하다. 112억 달러인 인천과 비교해도 1/4 수준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도 국내 신성장 산업 수출은 올해 상반기 4.5% 증가한 반면 부산은 14.6%나 감소했다. 부산이 유독 코로나19에 취약한 수출 품목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기준 신성장 산업 품목군의 수출 비중을 보면 부산은 소비재인 농수산식품과 화장품·생활용품·패션의류가 전체의 64.7%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항공·드론(17.5%) 플라스틱제품(13.4%) 정밀화학원료(1.6%) 순이다. 전국적으로는 산업규모와 부가가치 창출력이 뛰어난 차세대 반도체가 36.3%로 비중이 가장 크다. 이어 프리미엄 소비재(20.8%)와 플라스틱 제품(8.8%) 차세대 디스플레이(8.8%) 정밀화학원료(6.5%) 순으로 부산과 대조를 보였다.

전국 비중이 가장 높은 차세대 반도체 수출에서 부산 비중은 1.1%에 불과했다. 부산은 자동차가 주력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전기자동차 관련 수출도 0.2%에 그쳤다. 지역 비중이 두 번째로 높은 항공·드론도 특정 업체 의존도가 높아 산업구조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부산이 다시 일어서려면 지역경제를 견인할 수 있는 대기업·중견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부산 이전 기업을 위해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공과 규제 개선도 내놔야 한다.

지역기업 매출 규모와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 핀테크·바이오·친환경 모빌리티 산업 육성과 인프라 확충에도 대대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 부지가 다소 여유있는 장소를 골라 성장성이 높은 정보통신(IT) 기업이나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신산업 유망 기업 특구 조성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당장 대기업 유치가 힘들 경우 지역 강소기업을 중견기업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려는 정책적 뒷받침도 요구된다. 정부가 지난 23일 부산·울산·광주·대구·대전에 ‘판교 제2테크노밸리’와 같은 산업·주거·문화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부산에 24시간 운항이 가능한 신공항이 건설된다면 글로벌 기업 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국토 균형발전 차원에서라도 가덕 신공항 건설 계획을 서둘러 확정하길 촉구한다.

정용환 부산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