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다. 요즘 부산이 그렇다. 당장 발등의 불은 북구 만덕동 한 요양병원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 확진이다. 한꺼번에 53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데다 고령층 중증질환자가 많다. 더구나 이 요양병원이 있는 만덕동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동 단위 특별방역조치’가 내려진 곳.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마땅하다.

코로나19가 현재진행형이라면 지난 13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부산시에 대한 국정감사는 부산의 과거를 진단하고 미래를 점치는 계기일 수 있다. “이번 국감을 시정을 돌아보고 현안 사업의 동력을 얻는 기회로 삼아라”고 한 여당 의원의 충고 그대로다. 그런데 여기에도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으니 더 큰 문제다.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도끼를 베고 잔다’는 속담이 그래서 생겼나 싶다.

국정감사를 준비한 부산시야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다고 판단할 수 있겠으나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야 의원들이 24시간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가덕신공항 건설’에 한목소리를 냈으니 시의 입장도 수긍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논란을 부른 자료와 과정이 많다.

거칠게 정리하자면 ‘늙고 낡고 늦고 안이한’ 부산의 모습이다. 청년이 매년 1만 명씩, 지난 5년 동안 5만 명이나 빠져나간 늙은 도시요, 최근 5년 동안 상수도 파손사고의 41%가 노후 관로 탓인 낡은 상수도관을 가진 도시요, 신종 재난인 빌딩풍에 관련 법안 정비와 연구 용역 발주로 세월을 보내는 늦장 대처로 질타를 받는 도시요, 매년 성비위와 음주운전 공무원이 끊이지 않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처럼 안이한 도시다.

이를 국감 때마다 제기되는 지적사항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논란엔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이번 국감엔 공교롭게도 3개 일정이 겹쳤다. 부산시의회 제291회 임시회 개회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다. 시의회 날짜가 먼저 잡혔고, 국감 계획이 정해졌다. 국회와 협의해 국감 시작 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전 11시로 1시간 미뤘다. 진선미 국토교통위원장은 “지방의회 일정을 배려했다”고 설명했다. 부산시가,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한 셈이다.

그래서 더 아쉬운 대목이 있다. ‘신공항 국감’이라는 별칭이 붙고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 30명이 모두 참석함에도 가덕도 현장 방문이 이뤄지지 않았다. 부산시청에선 의원 30명이 10명씩 3개 조로 나눠 1인당 5분에 보충 2분으로 분초를 다투듯 일정을 소화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인원을 50명으로 제한한 탓이다. 많은 의원이 신공항 문제를 제기했다. 백 마디 말보다 현장시찰 한 번이 더 명확하게 가덕신공항의 필요성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또 있다. 청와대 회의엔 전국 17대 시도지사가 참석했다. 부산에선 변성완 시장권한대행이 국감에 참석하느라 박성훈 경제부시장이 갔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부산 울산 경남이 하나되는 동남권 메가시티 발전전략을 소개했다. 박 부시장이 북항재개발 2단계 예타 면제,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경부선 지하화, 가덕도신공항 건설 등 네 가지 부산형 뉴딜 사업을 설명했으나 정상적인 상황이 아님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다 아는 사안이다.

그러니 가덕도 현장 방문이나 변 대행의 청와대 회의 참석을 위해 국회와 협의하고, 이를 성사시키는 정치력 부재가 뼈아프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런 정치력을 부산시도, 여야도 보여주지 못했다. 어느 쪽에서도 “내 탓이오”란 말이 없다. 그 밑바탕엔 리더십 부재가 깔렸다.

이처럼 부산은 비상상황이다. 민선 시장이 성추문으로 자진사퇴한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다. 그래도 이만큼 관리하고 있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상황일 때보다 더 힘들지만 묵묵하게 역할을 하고 있는 실무자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국감에서 나온 자료들을 곱씹으며 정말 심각하네,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해결책을 찾아내야겠네 하며 반성하고 다짐하고 실행에 옮기려 했나 자문해야 한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을 수 없고, 걸어서 황하를 건널 순 없다. 그래서 두려워하며 삼가기를 마치 깊은 연못을 건너는 듯, 엷은 얼음 위를 걷는 듯하라고 했다. 전쟁이 일상이던 중국 춘추시대 가르침이다. 전전긍긍 여리박빙(戰戰兢兢 如履薄氷)이다. 그런 자세로 이 비상상황을 극복하며 시민의 불안을 덜어줘야 하는 것이 지금 부산시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국감은 끝났으나, 코로나19는 그 끝을 알 수 없고, 신공항은 오리무중이다. 언제까지 도끼를 베고 자야하나.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