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참패 6개월,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긴급수혈해 ‘뼈를 깎는 반성과 변신’을 약속했던 국민의힘. 하지만 당 안팎으로부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고, 당 지지도는 30% 안팎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의 적나라한 ‘위선’에도 치열하지 못했고, 내후년 대선의 ‘예비고사’가 될 내년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는 ‘잿밥’에만 욕심을 내는 옛날 버릇도 스멀스멀 흘러나온다. 이에 더해 내부총질에 헛발질까지. 곳곳에서 ‘사심(私心)’이 앞서는 모습이 보인다. ‘자기희생’은 찾아볼 수 없고, 퇴행적인 모습은 곳곳에 남아있다.
6개월도 채 남지않은 내년 4월 부산과 서울시장 후보 경선레이스는 시작부터 불협화음에 휩싸였다. 보궐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할 사무총장이 경선룰을 결정하는 경선준비위 부위원장으로 참여했다가 공정성 시비를 자초했다.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정리했으나, 선수로 뛸 생각이 있는 사람이 심판단에 들어가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다. 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됐겠지만, 당의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아보인다. 미약하나마 계파정치라는 구태도 엿보였다. 입으로는 “당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라면서, 행동은 얄팍한 기득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절박함도 찾아볼 수 없다. 김종인 위원장부터 외연확대에 자꾸만 선을 긋고 있다. 누구는 이래서 안되고, 누구는 저래서 안되고. 당 안팎의 모든 인재들을 끌어들여서, 서울시장 후보군들은 후보군대로, 대권에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원탁으로 유도해 끊임없이 난상토론하고 경쟁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경쟁자가 걸러지는 것이고, 국민에게 투영된 당의 부정적인 이미지도 개선될 수 있는 것이다. 유력한 대선후보가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부각시켜나가면 될 일이다. 그러지 않고는 30% 안팎에서 머물고 있는 정당지지도를 견인할 수 없다.
부산시장 후보 경선 레이스에서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직접 나서 후보군들을 깎아내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6일 부산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적격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국회의원 3, 4선 하고 이제 재미가 없으니 시장이나 해볼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 거론되는 인물 중에는 내가 생각하는 후보가 안보인다”라고 말했다. 내부총질에 가까운 발언이다.
왜 스스로를 깎아내리려 하나.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군으로 벌써 10여 명이 거론되고 있고, 그 가운데 몇 사람이 최종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젊고, 유능하고, 부산의 미래를 큰 설계로 그릴 수 있는 경제마인드가 있고, 개혁적인 인물’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 경쟁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국민의힘의 자산이다. 설령 김 위원장이 ‘시장이나 해볼까 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당의 지도자로서 공개적으로 할 말은 아니다.
혹시 김 위원장이 ‘부산은 누가 나와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경쟁력이나 역량도 검증되지 않은 일부 초선의원에게까지 부산시장 도전을 제안했다고 하니 그럴 수 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내년 부산시장 후보로 어떤 인물을 내세우느냐는 부산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향후 정국을 좌우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한 일이다. ‘어떤 인물을 어떤 방식으로’ 선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내세우느냐에 따라 국민의힘의 집권의지를 엿볼 수 있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는 그 이듬해 대선 결과를 예측해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된다고 볼 때, 부산시장 후보가 가지는 의미는 여야 모두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다. ‘명망 있고 경쟁력을 갖춘’ 대안 제시도 없이 무책임하게 내뱉을 말은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야당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들이 많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전셋집 품귀현상을 자초했는가 하면, 법무부장관은 공공연하게 거짓말을 하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잡아뗀다. 해수부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피살되고 불태워졌는데도 여당에서는 ‘월북’ 여부에만 관심을 쏟고 있고, ‘김정은=계몽군주’라는 기상천외한 말장난이 판을 친다. 국정감사 증인채택 요구는 무더기로 거부당하고,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넘나들면서 축소수사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한 국정감사에서도 야당은 정국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권력의 양심과 겸손이 사라지고 있음에도, 여권의 국민무시 행태가 도를 넘어도, 국민이 야당에 눈길을 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절박함도 보여주지 못하고, 알량한 기득권에만 매달리려는 허약한 야당에서 미래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서울본부장·서울정치부장 thrk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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